경제·금융

[박흥진의 할리우드 통신] 하늘로 떠난 '악역 배우' 팰랜스

'셰인' 킬러역 등 성격파 배우<br>채식주의자로 나무·그림도 사랑


지금 중년층들의 중고교 시절 영화구경을 꼭두 새벽 학교에서 단체로 갔다. 당시는 개인적으로 극장에 가면 정학을 받던 시절, 중학교에 입학해 필자가 제일 먼저 본 영화는 웨스턴의 고전 걸작 '셰인'(Shane?1953)이다. 아름다운 자연경치와 과묵하고 고독한 총잡이 셰인(앨란 래드) 그리고 셰인을 우상시하는 꼬마 조이(브랜든 디 와일드) 및 6연발 권총의 속사 대결과 음악 등 모든 것이 어린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그 누구보다 내게 강한 인상을 남긴 사람은 죽음의 사신 같은 킬러역의 잭 팰랜스. 피골이 상접한 얼굴을 하고 쉰 목소리를 내면서 사신의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은 꿈에 볼까 두려웠다. 팰랜스는 와이오밍 그랜드 티튼 지역에서 목장을 경영하는 라이커가 농부들을 몰아내기 위해 고용한 킬러 잭 윌슨(사진)으로 나온다. 그가 검은 모자에 검은 커치프를 목에 감고 검은 조끼에 검은 장갑과 검은 부츠를 신은 채 부츠의 박차소리를 내며 동네 살룬(Saloon)에 들어설 때면 개도 무서워 꼬리를 감추고 피할 정도였다. 팰랜스는 영화에서 단 12줄의 대사만을 말하고도 오스카 조연상에 올랐었다. 팰랜스가 지난 10일 캘리포니아 몬테시토에 있는 딸 할리의 집에서 사망했다. 향년 87세. 팰랜스의 얼굴이 해골에 가죽을 뒤집어씌운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가 2차대전 때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비행기가 추락해서 입은 부상 때문이다. 전화위복이랄까 그는 이 얼굴 때문에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배우가 됐는데 또한 그 탓에 많은 웨스턴과 다른 영화에서도 주로 악역을 맡았었다. 그는 생애 100여편의 영화 외에도 여러 편의 TV 영화와 시리즈에 나왔는데 그 중에서 좋은 사람 노릇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가 가장 연민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 리 마빈과 함께 저물어 가는 카우보이로 나온 '몬테 월쉬'(1970)다. 그리고 그가 무능한 대대장에 갈기를 세우고 반항하는 2차대전 벌지전투에 뛰어든 소위로 나온 '공격!'(1956)도 강렬한 작품. TV 영화로는 한물 간 권투선수로 나오는 '헤비급을 위한 진혼곡'(1956)에서의 연기 역시 통렬했다. 팰랜스 하면 또 잊지 못할 것이 1992년 LA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 있은 오스카 시상식이다. 그는 그 날 세번째로 조연상 후보에 오른 '도시의 얌체들'로 마침내 상을 탔는데 수상 뒤 무대에 엎드려 한 손으로 팔굽혀펴기를 여러 차례 해 완력을 과시했었다. 73세때다. 펜실베니아 탄광촌에서 태어나 고생을 하며 자란 그는 대학을 중퇴 프로권투선수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 기자를 거쳐 브로드웨이로 나갔다. 연극 경험이 도움이 돼 할리우드에 왔는데 첫 영화 '거리의 공포'(1950)에서 전염병균을 몸에 지닌 킬러로 나와 대뜸 호평을 받았다. 팰랜스는 1982~86년 ABC-TV 쇼 '리플리의 믿거나 말거나'의 호스트로 나왔었다. 팰랜스는 런던의 연속 살인자 잭 더 리퍼와 로마시대 검투사, 흉노족 맹장 아틸라 및 카스트로 등 종횡무진으로 다양한 역을 해냈던 성격파 배우였다. 생긴 것과는 달리 매우 따뜻하고 베푸는 마음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는 채식주의자로 나무와 시와 그림을 사랑했는데 자기가 직접 삽화를 그린 책 '사랑의 숲: 공백의 시 속의 러브 스토리'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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