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과 '촛불재판 개입' 의혹 사실로
판사들 문제제기에도 '몰아주기 배당'재판 독촉外 "튀는 판결 말라" 메일도 보내'사퇴가능성 일축'했던 신영철 대법관 거취 관심조사단 "법관독립 침해않게 사법행정 펴야"
김홍길기자 what@sed.co.kr
김능현기자 nhkimchn@sed.co.kr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인 지난해 촛불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대법원 진상조사단(단장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의 조사결과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e메일 논란에도 자진사퇴 가능성을 일축해온 신 대법관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거취가 주목된다. 이번 조사가 '사법행정'과 '재판개입'에 대한 애매한 판단기준에 대해 "법관의 독립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사법행정이 가능하다"고 처음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큰 성과라는 지적이다.
◇35건 특정재판부에 배당=16일 대법원 진상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원장이던 신 대법관과 당시 허만 형사수석부장은 지난해 6월19일부터 7월11일까지 8건의 초기 촛불집회 사건을 한명의 부장판사에게 몰아줬다. 하지만 다른 형사 단독 판사들은 7월14일 모임을 갖고 시국사건을 몰아주는 배당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형사수석부장과 신 대법관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전했다. 신 대법관은 다음날 양형토론회라는 이름으로 단독 판사들을 소집했고 이 자리에서 이후 접수되는 사건을 전산 프로그램에 의한 무작위 배당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신 대법관은 접수된 촛불집회 사건 96건 중 61건만 무작위로 배당하고 35건은 뚜렷한 이유 없이 일부 재판부가 배제된 채 배당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조사단은 재판부의 지정 기준이 모호하고 일관되지 못한 점, 지정배당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배당 예규의 취지를 벗어나는 사법행정권의 남용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튀는 판결 말라' 노골적 개입=신 대법관은 촛불사건을 골고루 배당하기 시작한 뒤인 지난해 8월14일 압력으로 비칠 수 있는 e메일을 처음 보내면서 "보편적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해달라"고 했다. 이는 '튀는 판단을 하지 말 것'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당시 형사7단독 박재영 판사가 10월9일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며 피고인에게 보석을 허가하고 다른 일부 형사 단독 판사들도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지켜보자며 속속 재판을 연기했다. 촛불집회 관련자가 속속 보석으로 풀려나자 신 대법관은 10월13일 한 단독 판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시국이 어수선할 수 있으니 보석을 신중히 결정하라"고 말했다. 신 대법관은 10월14일~11월24일 형사 단독 판사들에게 3차례 동시 e메일을 보내 "통상의 방법으로 재판을 진행하라"고 누차 당부했다. 이는 현행법에 따라 유죄 선고를 내리라는 지시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진상조사단은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소신껏 재판하라는 취지로만 이해된다면 재판 관여로 보기 어렵다"면서도 그러나 "메일 맥락상 합헌ㆍ위헌의 구별 없이 재판진행을 독촉하는 의미로 읽힐 수 있는 메일을 반복적으로 보내는 등의 일련의 행위는 재판 진행에 관여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와 함께 신 대법관은 지난해 10월13일 예고 없이 불쑥 헌법재판소로 가서 이강국 헌재 소장을 만나 '헌재에 계류된 사건이 많아 사건을 빨리 처리해야 이쪽 재판이 촉진되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밝혀져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관독립 해치지 않게 사법행정 펴야"=조사단은 재판개입 행위와 사법행정권의 남용이라는 애매한 경계에 선 사안에 대해 "사법행정은 법관의 독립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며 첫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비록 조사단의 견해이긴 하지만 사법행정과 재판개입에 대한 그동안의 모호한 판단기준을 처음으로 명확히 제시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사단은 "위법한 재판을 막거나 명백한 실수를 바로잡기 위한 주의촉구 등의 경우가 아닌 한 재판의 내용이나 절차진행에 대해 구체적 지시를 하거나 특정한 방향이나 방법으로 직무를 처리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재판 관여인지 여부는 발언자의 의도나 상대방의 인식보다는 객관적ㆍ외형적으로 보아 재판에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며 실제 재판에 영향을 미쳐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신 대법관 거취 관심=조사단의 결과가 재판독촉 e메일 논란이 불거진 후에도 "법대로 하라고 했을 뿐이다" "자진사퇴 가능성은 없다"고 해명해온 신 대법관의 거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일단 신 대법관 사건은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직자윤리위에 대법관 관련 사건이 회부된 것은 사상 처음으로 심의 결과에 따라 대법원장이 법관징계위원회에 징계를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대법관 신분은 헌법에 보장된 것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퇴진을 압박할 방법이 없게 된다. 신 대법관의 진로는 스스로의 판단에 달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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