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인 대규모 프로젝트를 결정함에 있어 ‘균형발전’이냐 ‘선택과 집중’이냐를 선택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특히 다원화되고 분권화된 21세기 한국 사회에 있어서 이러한 정책결정은 거센 역풍을 맞기도 하고 소모적 논쟁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가 몸담고 있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만큼은 그 선택이 뚜렷해 보인다. 사실 글로벌화된 세계경제에서 어떤 분야에서든 진정한 경쟁자는 안방이 아니라 바다 저 너머에 존재한다. 특히나 과학기술계는 남보다 한발 앞선 최고가 아니면 그 존재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줄기세포와 관련한 치열한 국가 간의 연구개발 경쟁을 보더라도 이는 자명한 사실이다.
첨단의료복합단지 조성 시급
그렇다면 세계적인 과학기술 성과창출을 위한 해답은 무엇일까. 바로 ‘선택과 집중’,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한다면 융ㆍ복합이다.
과학기술 분야에 있어서 만큼은 ‘선택과 집중’은 필수적이다. ‘균형발전’을 이유로 연구자와 연구 인프라를 이곳저곳에 분산해서는 이도 저도 아무 것도 안 되고 만다. 목표가 정해지고 전략이 짜이면 이에 따라 인력도 인프라도, 그리고 투자도 철저히 집중돼야 한다. 더구나 경쟁상대가 선진국일 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국내 1위라 하더라도 세계 1위는커녕 그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는 것이 과학기술계의 솔직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기술 분야에서 갈수록 중요해지는 융ㆍ복합 추세는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을 더욱 높여가고 있다. 특정한 단일기술만으로 새로운 제품이나 신산업ㆍ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미 정보통신과 생명공학ㆍ나노 및 원자력기술처럼 전혀 다른 두 가지 이상의 기술이 결합돼 새로운 제품이 쉴 틈 없이 탄생하고 있다. 전통적인 분야가 아닌 새로운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융ㆍ복합 연구환경이 구축된 곳에서 탁월한 성과들이 창출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국가 미래성장동력의 한 축을 담당할 첨단의료복합단지도 마찬가지다. 첨단의료복합단지는 국내 의료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5조원이 넘는 돈이 투자될 대형 국가 프로젝트이다. 신약 개발과 첨단 의료기기 개발 및 임상시험을 위해서는 출연연은 물론 기업ㆍ대학ㆍ의료기관 등이 기초연구-응용연구-임상연구-생산의 각 가치사슬 단계에서 유기적인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첨단의료복합단지의 성공적 조성을 위해서는 주거ㆍ교육ㆍ문화 등 기본적인 정주여건은 물론 BT와 ITㆍNTㆍRT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융ㆍ복합 기술개발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첨단 융ㆍ복합 신기술을 의료분야에 접목해내기 위한 관련 전문인력의 뒷받침도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위해 이 같은 기반을 처음부터 새롭게 갖춰야 할까. 가능한 일도 아니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여러 과학기술 분야에서 최고의 노하우를 갖춘 정부 출연연구소와 대학 및 벤처기업, 그리고 여기에 종사하는 2만명에 가까운 연구인력과 이들을 뒷받침하는 완벽한 인프라를 갖춘 곳이 이미 국내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대덕연구개발(R&D)특구다. 대덕R&D특구는 과학기술을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해 국가가 지난 35년여간 공들여 조성해온 선택과 집중, 융ㆍ복합 R&D 성과 창출의 마르지 않는 샘이다.
대덕 R&D특구 적극 활용해야
국가 미래성장동력의 한 축을 담당할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를 위해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30년 뒤 우리나라 경제를 책임질 미래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과연 어디에 그 입지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라는 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진적이고 선도적인 산학연 복합 클러스터로 자리매김한 대덕R&D특구를 첨단의료복합단지의 성공적 조성을 위한 기반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국가적인 예산낭비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게 될 것이 분명하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국가의 미래성장동력을 발굴해내는 사명을 띠고 있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종사자로서 첨단의료복합단지를 대덕R&D특구에 건설하는 것이 선택과 집중, 그리고 융ㆍ복합이라는 관점에서 모두 국가를 위해 옳은 방향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