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7월 10일]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영웅

필자는 아침마다 오페라단에 가기 위해 전철을 탄다.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오페라 가수여서 그런지 그들의 표정ㆍ손짓ㆍ몸동작 하나하나를 보며 연구한다. 어떤 사람은 환한 웃음을 짓고 또 어떤 사람은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의 눈빛들, 중년 신사가 멋있게 신문을 읽고 있는 모습, 누군가와 정신 없이 통화하는 아주머니. 그들의 모습을 보며 오페라를 연구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필자를 보고 있는 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라고 생각한다. 정신 없이 달려가는 현대인의 모습일까. 아니면 행복한 모습으로 보일까. 그냥저냥 사는 사람일까. 아니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일까. 축구·오페라 즐기는 이탈리아인 길지 않은 사회생활을 정확히 반으로 나눠 이탈리아와 우리나라에서 꾸려온 필자는 이런 우리나라에 이탈리아에서 알게 된 영웅을 한명 소개하고 싶다. 우리 눈으로 보면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는 참 이상한 나라다. 국영수 과외보다는 축구 과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저녁식사는 기본이 2~3시간이다. 어린 아이가 자기 친구라며 동네 할아버지를 소개해주기도 하고 낮에는 무려 4시간 동안 가게 문을 닫고 낮잠 시간을 갖는다. 여름 휴가도 한주가 아니라 한달이다. 그들은 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축구에 지나치게 열광하며 오페라를 정말 사랑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장소는 대개 축구장과 오페라 극장이다. 필자는 크고 작은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많은 공연을 했는데 그때마다 오페라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 놀랬고 공연 이후 광장에 둘러앉아 음악회의 감동을 서로 나누는 그들의 모습이 정말 부러웠고 행복하게 보였다.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보며 눈물 흘리는 아이들을 보았고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보며 즐거워하는 젊은 연인들도 보았다. 그리고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춘희’를 보며 함께 부르는 할머니도 보았다. 청소부 아저씨가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며 신나게 일하고 아이들이 오페라 아리아 가사를 개사해 노래하며, 연인들이 팔짱을 끼고 오페라 극장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유학 생활 초기에는 이런 이탈리아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과연 이들은 돈을 언제 벌어 풍요로운 삶을 살려고 그러는 것일까. 그러나 필자는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이탈리아가 오페라의 본고장이 된 것은 훌륭한 작품ㆍ작곡자ㆍ성악가들이 많아서만이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며 행복해 하는 시민들이 함께 있어서이고 이들은 행복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찾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의 영웅도 세상을 행복하게 하려면 이래야 한다고 외치거나 돈 또는 힘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행복하게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영웅은 그래서 정치인이나 부자이기보다는 축구선수이거나 오페라 가수이다. 약간의 여유로 행복 느껴보길 소중한 추억을 가슴에 담고 귀국한 다음날, 나는 어느 도시에서 열린 음악회를 하게 됐는데 그때 부른 곡이 조아치노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나는 이 거리의 만물박사’라는 아리아였다. 내용은 ‘나는 이 마을의 모든 고민을 해결해주고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는 피가로의 아리아였다. 요즘같이 복잡하고 바쁜 사회 속에서 약간의 여유, 그리고 행복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필자는 오페라의 주인공 피가로처럼 사람들에게 행복과 감동을 전하는 성악가, 많은 사람들을 향해 행복을 노래하는 성악가가 되고 싶다.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은 슈퍼맨이나 거창한 구호를 외치며 큰 일을 하는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필자는 오늘도 슈퍼맨이 아닌 피가로로서 세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꿈꾸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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