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토요 Watch] 증권가 찌라시의 '위험한 줄타기'

'~카더라'는 꼬리를 물고 … 쉿! 너 그 얘기 알아?

영화 '찌라시'의 한 장면. 열혈매니저 김강우(우곤 역)가 찌라시의 근원을 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 영화사 수박 제공



[토요 Watch] 증권가 찌라시의 '위험한 줄타기'
'~카더라'는 꼬리를 물고 … 쉿! 너 그 얘기 알아?

강광우기자 pressk@sed.co.kr














영화 '찌라시'의 한 장면. 열혈매니저 김강우(우곤 역)가 찌라시의 근원을 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 영화사 수박 제공

















일본서 건너온 돈벌이 수단으로일제시대 미두거래때 주로 사용작전세력 주가 띄울 '설계' 하고인터넷·메신저로 거짓 정보 흘려M&A 많던 2006~2009년 큰 위력 고의적으로 악의성 소문 퍼뜨려상장기업 주가폭락 피해 입기도

국내 찌라시의 시작은 1900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6년 미곡상(米穀商)들이 모여 미곡을 거래하는 인천미두취인소가 생기면서 시세·날씨·재고물량·총독부의 정책 등에 대한 정보가 종이로 인쇄된 찌라시 형태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1906년 일본정보통신사가 국내에 경성전통(전보통신) 지국을 만들면서 회원들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했고 1920년 인천기미통신이라는 전보사는 미두꾼들에게 정보를 돌렸다. 당시 증권사에 해당하는 중매점을 통해 쌀 시세와 관련된 정보들이 움직였고 지금의 작전세력처럼 남보다 먼저 얻는 정보를 회원들에게 돈을 받고 파는 경우도 있었다. 미두거래를 통해 400원의 밑천으로 40만원의 재산을 일군 '미두왕'반복창은 작전세력에게 이용당하기도 했다. 쌀 시세를 전보로 주고받던 시절 반복창은 우체국과 중매점 사이를 뛰어다니며 시세를 전달했는데 이 과정에서 작전세력들이 반복창에게 돈을 주고 정보를 사 시세차익을 남겼던 것이다.

사실 미두거래소를 사이에 두고 정보를 흘려 돈을 버는 방식은 1890년부터 일본에서 시작했고 10~20년 후 같은 수법을 일본인이 한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사용했다.

지금 증권가에서 돌고 있는 찌라시도 일본에서 건너온 돈벌이 수단이었고 작전세력이라는 개념도 일본에서 들어왔다. 찌라시의 어원도 일본어로 전단지·광고지를 뜻하는 치라시(散らし)다.

당시 찌라시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위문복 하나대투증권 e-Business 지원부 부부장은 "당시 미두꾼이나 개인투자자는 정보를 접하기 어려웠으며 찌라시가 시세를 왜곡해 1석에 50원이던 쌀 가격이 250원까지 폭등하는 사례도 있었다"면서 "1919년 3·1운동도 찌라시의 영향으로 쌀값이 폭등해 소작농이 들고 일어난 것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찌라시:위험한 소문'에서도 찌라시의 위력은 대단하게 표현되고 있다. 정계와 재계 고위급 인사가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찌라시를 통해 정치적 라이벌과 여배우의 염문설을 퍼뜨린다.

허위로 지어낸 찌라시로 사회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찌라시의 파급력이 크게 묘사된다.


현실에서의 찌라시는 어느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까. 2006~2009년 사이 코스닥시장에서 인수·합병(M&A)이 활발했던 시기에는 찌라시가 일제 시대에 이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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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증시가 부진한데다 개인투자자들도 정확하고 빠른 정보 습득이 가능해짐에 따라 찌라시의 파급력이 크게 위축됐다. 11년째 전업투자를 하면서 찌라시를 활용한 투자 경험이 있는 한 전업투자자는 "2006~2009년 당시에는 한 기업에 대한 호재성 찌라시가 나오면 그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주가가 올랐기 때문에 찌라시 정보를 이용한 투자가 상당히 활발했다"면서 "최근 2년간 증권시장이 지독한 불황을 겪으면서 눈먼 돈은 사라지고 속칭 '선수'들만 남았기 때문에 찌라시가 돈다고 해서 주가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지금도 주가조작을 위한 찌라시는 철저히 계획적으로 유포된다. 시세조종으로 시세차익을 얻고 싶어하는 작전세력은 어떻게 주가를 띄울지 '설계'를 한 뒤 주식을 매집하고 기업과 관련된 호재성 찌라시를 일명 '메돌이(메신저로 찌라시를 돌리는 사람)'를 통해 컴퓨터 메신저나 인터넷 주식 종목 게시판을 통해 유포시킨다.

이후 인터넷 주식 동호회를 통해 회원들에게 직접 주식을 매수하게 유도한 뒤 전문가 방송 등을 통해 공식화한다. 작전세력 중 일부는 언론매체에 e메일로 제보한 뒤 언론 지면에 노출돼 주가가 크게 급등하면 가지고 있는 주식을 매도하는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취한다. 관련 사정에 정통한 한 전업투자자는 "찌라시로 시세조종을 하는 세력은 증권사처럼 주가에 호재가 될 만한 재료를 취합하는 사람, 주식을 운용하는 사람, 트레이딩을 하는 사람, 설거지하는 사람(세력들의 물량을 털어내기 위해 마무리하는 사람) 등으로 구성돼 룸살롱이나 은밀한 곳에서 작당모의를 하는 경우가 많고 실제 '전주(錢主)'는 모습을 잘 나타내지 않는다"고 전했다.

찌라시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증권사 정보팀, 기업 홍보·대외 업무 담당자, 국회의원 보좌관 등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에 찌라시를 제작하는 회의에 참가한 바 있는 한 대기업 종사자는 "여의도에 사람이 별로 없는 카페룸에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모여 업계에서 들은 풍문이나 뒷이야기를 공유하고 여기서 언급되는 걸 수첩에 적은 뒤 지인들을 통해 전달하는 방식으로 찌라시 회의가 이뤄진다"면서 "영화에서는 도청까지 동원되던데 그 정도 수준은 아니고 연예인과 관련된 이슈는 부수적인 이야기"라고 말했다. 증권사의 정보모임도 경쟁사의 신상품 출시소식 등 업계와 관련된 내용이 공유되는 모임으로 변모되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증권사 정보 라인도 이전처럼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고 거의 자취를 감췄다"면서 "이전에는 국회 국정감사 이슈가 있으면 아는 보좌관들을 통해 고위급 인사들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모인다고 해도 증권업계에 새로운 상품이 나온다는 소식 등을 공유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찌라시의 위력이 예전만은 못해도 악의를 갖고 유포시킨 정보의 영향력은 아직도 상당하다.

최근 대규모 공급계약을 맺었다고 공시한 A상장사는 경쟁업체에서 유포한 것으로 추정되는 찌라시로 큰 타격을 받았다.

찌라시는 공급계약이 사실이 아니라고 전했고 이 영향으로 주가는 폭락했다. 악의성 정보를 유출하는 세력들은 공매도(주식을 빌려 매도 주문을 낸 뒤 주가가 떨어지면 주식을 팔아 차익을 남기는 주식매매기법으로 주가가 떨어지면 수익을 낼 수 있음)를 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거래소에서는 주식시장에서 찌라시를 활용해 부당이득을 취하는 세력을 찾아내 금융감독원이나 검찰에 고발하고 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찌라시를 통한 공작은 잘 먹히지 않을 것 같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본부 관계자는 "거래소 내부 정보팀에서 받는 찌라시 유포 정보와 예방감시부 차원에서 인터넷 게시판·트위터·전문가 방송 등을 모니터해 허위 정보를 유포하는 세력들을 잡아낼 수 있다"면서 "허위 정보가 주가에 반영된다고 하면 곧바로 조사에 들어가고 인터넷에 허위 정보를 올렸다가 지워도 시스템상에 다 잡히기 때문에 애초에 장난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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