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개혁진통' 앓는 KAIST

한국 과학기술의 상징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지금 ‘패닉’ 상태에 빠져있다. 지난달 초 이 대학 인사위원회가 교수들의 정년을 보장하는 ‘테뉴어(종신교수ㆍtenure)’ 심사를 하면서 신청 교수 35명 가운데 43%에 해당하는 15명을 ‘무더기’ 탈락시켰기 때문이다. 테뉴어는 교수 임용 후 일정 기간이 경과한 뒤에 신청 교수의 연구성과 등을 종합심사해 정년보장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 지난 71년 개교 후 지난해까지 KAIST의 200여명 교수가 테뉴어를 신청했고 단 한 명의 탈락자 없이 정년을 보장 받았었다. 이번 심사 결과는 교수사회에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고배를 마신 15명의 교수들은 다음에 또 지원을 할 수 있지만 단기간에 연구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부분 타 대학이나 연구기관으로 이직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거 탈락의 배경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경쟁이 사라진 교수사회 풍토 속에서는 KAIST가 세계 일류 공과대학의 꿈을 결코 실현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던 서남표 총장이 조직 내부에 강력한 개혁 시그널을 보내기 위한 조치였다는 게 KAIST 안팎의 분석이다. 특히 서 총장은 이번 심사에서 해외 석학들의 ‘리뷰레터(평가서)’를 심사에 적극 활용했다고 한다. 예컨대 테뉴어를 신청한 물리학과 A교수에 대해 물리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들이 바라보는 A교수에 대한 평가서를 제출 받았다는 것. KAIST의 한 고위 관계자는 “국내에서만 유명하면 뭐하나, 세계적 권위자도 인정하는 국제적 명성이 더 중요하다”며 리뷰레터가 무더기 탈락을 초래한 주요 심사항목으로 작용했다고 전했다. 이 대학 내부의 동요는 당연하다. 43%에 달하는 탈락률이 보여주듯 총장 개인의 개혁의지에 심사의 공정성이 훼손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위 ‘데드우드(쓸모없는 사람들ㆍdeadwood)’류의 교수들이 신청한 것도 아닌데 너무 많은 인원이 탈락했다”는 불만도 비등하다. 이번 사태는 KAIST 내부에 당분간 상당한 내홍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타이틀을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로 바꾸기 위한 KAIST의 불가피한 몸부림이었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대학ㆍ기업을 가릴 것 없이 실력보다는 학연ㆍ지연ㆍ온정주의가 여전히 우선하는 한국사회 특유의 인사 시스템 속에서 KAIST의 개혁 작업이 주목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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