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채권시장 활성화 하려면

오규택 중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채권연구원 원장

최근 실물경기가 양극화되면서 회사채시장의 자금 중개기능이 약화되고 이로 인해 다시 내수회복이 지연돼 경기가 양극화되는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회사채시장은 무보증 회사채시장으로 전환됐고 그 규모가 커져 주로 신용도가 양호한 대기업의 자금조달시장으로 이용됐다. 그러나 최근 삼성전자를 포함한 대기업들이 수출증가와 투자감소로 회사채를 발행하기보다는 회사채를 상환하고 여유자금을 운용하는 자금공급자로 전환돼 우량한 회사채의 공급이 줄어들고 있다. 반면에 내수감소로 신용위험이 증가한 중소기업들은 은행에서 대출받기 어렵고 회사채시장도 미성숙해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서 투자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 올해 중소기업진흥공단이 배정한 설비자금대출 예산이 이미 모두 소진됐다는 점을 봐도 자금부족이 중소기업의 투자확대를 저해하는 요인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회사채시장의 공급감소는 기관투자가의 투자제약 때문에 심화하고 있다. 적립금의 89%를 채권에 투자하는 국민연금은 우량한 A 등급 이상의 회사채에만 투자하고 있다. 보험료의 유입으로 매월 채권투자액을 늘려야 하는 국민연금은 어쩔 수 없이 국공채나 금융채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우리나라 국공채 이자율 수준이 다른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의 수준보다 낮은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인하해도 투자가 증대되는 효과는 적다. 콜금리 인하는 오히려 국공채 수익률 인하만 초래해 기관투자가에게 해외투자를 강요함으로써 국내자금의 해외유출만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내수를 회복하고 국내 저축이 잠재성장력을 증대하는 쪽으로 활용되려면 신용등급이 BBB 이하인 기업들이 필요한 설비투자자금을 회사채시장을 통해 조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중소기업채권을 모아 자산유동화채권을 발행하는 프로그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정책은행인 재건신용은행(KfW)은 ‘PROMISE’라는 표준화된 유동화 프로그램을 통해 20조원이 넘는 금액을 독일의 중소기업에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은행도 이를 벤치마크 삼아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적극적으로 대출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둘째, 중소기업이 시설자금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때 발행하는 회사채의 만기를 3년에서 5년 이상으로 장기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3년 미만으로 소극적으로 운영되는 신용보증기금의 보증만기를 5년 이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또 장기회사채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선진국에서 활용되는 지급보증전문회사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셋째, BBB 등급 회사채에도 공공기금을 투자하도록 기관투자가의 투자제약을 완화해야 한다. 현재의 투자제약 때문에 BBB 등급 회사채 스프레드는 인하되지 않아 콜금리의 인하가 BBB 등급 회사들의 자금조달비용 인하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 넷째, 향후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규제가 강화돼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요구자본금이 커지면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현재 증권거래법에서 금지돼 있는 신용파생상품 거래를 활성화해 은행들의 신용위험 관리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다섯째, 투자자에게 BBB 등급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3개 신용평가기관의 등급조정이 적합한지를 시민단체나 투자자가 평가하는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채권시장의 국제화를 이용, 기업들의 다양한 자금조달 수요를 충족시키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일본기관들은 일본기업들이 아시아에 진출할 때 필요한 투자자금을 진출국의 채권시장에서 조달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은행들도 중국에서 위앤화표시채권을 발행해 조달한 위앤화자금을 중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들에게 대출해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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