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7월 12일] <1746> 쇼군


SetSectionName(); [오늘의 경제소사 7월 12일] 쇼군 권홍우 편집위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일본력 1192년 7월12일,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쇼군(征夷大將軍)직을 받았다. 요리토모는 라이벌인 다이라 무사가문을 누른 1185년부터 일본을 실질적으로 지배해온 인물. 국왕보다 더한 권력을 행사하던 그는 쇼군에 제수되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 바쿠후(幕府)를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쿠후의 본래 의미는 동쪽의 오랑캐, 즉 홋카이도의 아이누족을 정벌하는 쇼군이 설치해 군의 사무 일체를 처리하는 막사. 국왕이 전시도 아닌 평시에 쇼군을 임명하고 바쿠후 설치까지 동의했다는 사실은 권력을 내놓겠다는 뜻이었다. 쇼군 요리토모는 조정과 동쪽으로 40㎞ 떨어진 가마쿠라(鎌倉)에 바쿠후를 열었다. 국왕과 조정은 제사와 외교에 관한 업무를 제외하고는 모든 권력을 빼앗겼다. 여몽연합군의 침공 이후에는 외교권마저 잃었다. 권력을 넘긴 이유는 간단하다. 무사단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다. 가마쿠라 바쿠후의 성립은 '권위(국왕)와 권력(쇼군)의 분산'이라는 일본 특유의 사회구조를 굳혔다. 물론 고대국가 형성기부터 외척 또는 은퇴한 상황(上皇)이 실제 권력을 갖는 이중적 지배체제가 존재했으나 왕족ㆍ귀족이 아닌 무사들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군사정권의 지배는 국왕세력의 일시적 반격이 성공한 3년여를 제외하고는 무로마치ㆍ도쿠가와 바쿠후를 거치며 메이지유신이 일어난 1867년까지 672년간 이어졌다. 국왕은 끼니를 걱정하고 즉위식과 장례식마저 제대로 못 치르는 미약한 존재로 떨어졌다. '살아 있는 신'으로 부각된 것은 메이지유신 이후부터다. 쇼군의 집권 과정을 경제의 눈으로 바라보면 생산수단의 확보. 쇼군을 '사실상의 국왕'으로 만든 요리토모가 최후의 싸움에서 승리한 비결도 상대진영의 대기근으로 인한 병참상의 우세 덕분이었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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