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10월 25일] 국가적 위기 와중에 몽니 부려서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며칠 전 청와대 서별관에서 열린 관계당국 회의에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사고는 누가 치고 왜 우리가 뒤치다꺼리를 해냐 하느냐”는 투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고 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중앙은행의 존재이유와 사명을 망각한 소아병적 사고이자 경제위기의 와중에 몽니를 부리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살 만하다. 우선 100년 만에 최악이라는 글로벌 경제위기에 휩쓸려가고 있는 총체적 위기상황에서 책임소재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위기는 누구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장기간의 장기호황 끝에 거품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위기이다. 책임소재를 따지는 이기적 방식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지금까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위기와의 전쟁 최일선에서 과감한 금리인하와 유동성 공급을 통해 금융위기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만 해도 지금의 금융위기 사태가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의 책임이라는 일부의 지적에도 개의치 않고 과감한 금리인하와 1조달러가 넘는 유동성 공급 등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대책을 총동원하는 의젓한 모습을 보여왔다. 대공황 전문가이자 위대한 경제학자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세계적 금융위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은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지난해 8월 초 한은은 서브프라임 사태가 수습국면에 들어서고 있다며 기준금리를 올렸다. 그러나 불과 몇시간 뒤 유럽 최대 은행 중 하나인 BNP파리바은행이 도산함으로써 서브프라임 사태의 충격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국제금융환경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꼽힌다. 이후에도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과는 반대로 금리인상에 열을 올림으로써 시중 자금난과 고금리 경쟁의 단초를 제공했다. 국제공조가 논의되고 있기는 하지만 당면한 글로벌 위기는 기본적으로 각국이 알아서 헤쳐나가야 한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서로 책임소재나 따지고 떠넘기기에 급급해서는 위기의 재앙을 피할 수 없다. 국가경제를 살린다는 대승적 안목에서 책무를 다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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