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제1기 집권 초 선거에 기여가 큰 대기업 오너들을 위해 재산상속세를 인하해주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 고든 무어 인텔 회장, 그리고 IMF 환란 이래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조지 소로스 회장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재벌기업주들이 일제히 이를 반대했다. 오히려 “상속세를 더 많이 거둬 부의 대물림 현상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 무렵 대한민국에서는 재계대표 한분이 유난히 반기업정서가 높은 우리 사회 현상을 개탄하며 너무 억울하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다. 국민의 55% 이상이 재벌과 기업주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부정적인 한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한 말인즉 도대체 우리나라 경제를 누가 이 정도로 끌어올렸으며 이나마 일자리를 누가 마련했느냐는 것이다.
자본주의 본거지인 미국도 지난 세기 초반까지는 국가적으로 반기업정서가 아주 높았다. 오죽했으면 뭇 백성들이 재벌들을 가리켜 ‘강도귀족들(Robber Barons)’이라고 불렀을까. 중소기업과 소상인들, 그리고 노동자ㆍ농민들을 울리는 독과점적 시장지배 행위가 극심했고 경제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자원의 난개발과 환경생태계 파괴, 마침내는 금융공황과 경기침체의 원인을 제공했다. 재벌들이 온갖 비리와 부조리에 관련됐고 정경유착 행위가 관행화됐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이들 재벌기업들의 경영철학이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을 시작했다. 부의 세습화와 대물림 행위부터 사라졌다. 일찍이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강조했던 열심히 기업을 일구고 부를 축적해 성공한 다음, 피땀 흘려 축적한 부를 자식들에게 불로소득으로 대물리지 않고 흔쾌히 사회에 환원하기 시작했다. 임종 때는 의례 자유시장 경쟁에서 낙오한 사회경제적 약자와 소외 그룹을 구제하기 위해 공공 박애단체들에 유산을 몽땅 기부했다.
나아가서 문화ㆍ예술ㆍ복지ㆍ환경ㆍ생태계 분야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정부에 뒤질 새라 기업들이 다퉈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 건설에 크게 공헌했다. 이렇게 반세기 이상 지속돼온 기업인들의 사회공헌 활동은 사회 전반에 깊게 뿌리 내렸던 반기업정서를 점차 사라지게 했다. 특히 족벌경영이라든지 친족상속, 그리고 황제경영 방식과 정경유착적인 탈세 행위를 스스로 단절한 결과이다. 투명한 윤리경영을 표방하며 자기 자산을 꾸준히 사회에 환원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을 감동시키고 존경심을 불러들였다. 화려한 변신이 일어난 것이다.
빌 게이츠 부부는 지난 99년부터 2003년까지 4년 동안 세계의 가난하고 어렵고 병든 사람들과 어린이들을 위해 보유자산 460억달러의 54%에 해당하는 250억달러를 기부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해 개인적으로 벌어들인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내놓았다. 고든 무어 부부는 지금까지 70억달러를 기부했는데 이는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사적 자산의 144%나 된다. 그 기간 조지 소로스 역시 피 말려가며 번 자기재산의 68%인 24억달러를 사회에 환원했다.
지난 대선 때는 ‘한국식 차떼기’가 아니고 공개적으로 부시 대통령의 낙선을 위해 수천만달러를 쾌척했다. 아메리칸센추리사의 창업주 제임스 스토어스 부부는 가진 자산의 2.7배에 해당하는 13억4,500만달러를 이미 사회공헌 기금으로 기증한 바 있다.
미국 재벌기업주들의 사회공헌 기부정신은 빌 게이츠 부부의 2004년 1월27일 파리에서 가진 메트로지와의 인터뷰에서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당대에 “재산을 모은 재력가들은 지구촌의 건강ㆍ교육ㆍ연구 분야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자기 소득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을 발견하기 바란다”고 권한 것이다.
더욱 감동적인 기사는 세계 최고 부자인 이들 부부가 밝힌 사후 유산처리 계획이다. 세 자녀에게 모두 합쳐 1,000만달러만 물려주고 나머지 459억9,000만달러는 몽땅 자선사업에 쓰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자식들이 너무 많은 돈을 가진 채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그들의 장래에 별로 좋지 않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엄밀히 말해 우리나라의 반기업정서는 “반기업인”정서라고 표현해야 정확하다. 누가 자유시장 경제원리와 자유기업 자체를 나쁘다고 말하고 있는가. 아무도 없다. 모두들 ‘삼성’을 좋아하고 ‘현대’를 자랑한다. 그런대도 여전히 “반기업인” 정서가 팽배하다면 그 역설(paradox)은 기라성 같은 현재의 2ㆍ3세 대기업 오너들이 대답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