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불황없는 재벌 문어발확장(사설)

우리나라 재벌들의 문어발 확장 욕망은 참으로 대단해서 불황도 타지 않는다. 경제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을 때도 재벌들은 몸집 부풀리기에 열중했다.공정거래위원회가 내놓은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현황」을 보면 재벌의 경제력 집중현상이 해가 갈수록 심화, 거대 공룡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허위대만 커졌을뿐 재무구조는 거꾸로 취약해져 건강상태가 나빠져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30대 재벌의 계열사수는 지난해 6백69개에서 8백19개로 한해 사이에 1백50개가 늘어났다. 놀라지 않을 수 없는 팽창력이다. 지난 95년 7개, 96년 42개가 늘었던 것에 비하면 재벌의 문어발 확장속도가 가속적으로 빨라져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도 상위그룹일수록 몸집불리기가 심하다. 30대재벌의 자산총액도 3백48조4천억원으로 지난해보다 61조5천억원이 증가했다. 증가율이 무려 21.4%에 이른다. 93년 11.8%, 94년 17.0%, 95년 22.9%로 갈수록 비대해지고 있음을 알수있다. 몸집이 커진 만큼 체력이 튼튼하냐 하면 그렇지 못하다. 30대 재벌의 평균자기자본비율은 95년 20.5%에서 96년엔 18.3%로 되레 낮아졌다. 자기자본은 들이지 않고 남의 돈을 빌려 기업을 확장했으며 그 바람에 덩치에 걸맞지 않게 체력은 갈수록 허약해지고 있다. 한마디로 정부의 재벌정책이 겉돌았음을 의미한다. 문민정부들어서도 과거정권에서처럼 경제력집중 억제와 업종 전문화 정책을 강력히 펴왔다. 정부가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재벌들은 적극 호응, 문어발을 스스로 자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이나 재벌의 약속은 모두 공염불이 되었다. 앞으로는 정도를 말하면서 뒤에서는 딴 궁리를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세계에 내놓을 만한 기업이나 명품을 갖고 있지 못하다. 재벌은 있으되 세계 일류 기업은 없고, 재벌 상품은 있으되 세계인이 알아주는 브랜드가 없다. 지금 세계는 국경이 무너진 무한 경쟁시대다. 세계의 기업들은 경쟁력을 키우고 일류기업이 되기위해 쉼없는 도전을 하고 있다. 기업을 슬림화하고 합병과 제휴를 통해 대형화 전문화해 가고 있는 것도 바로 경쟁력을 길러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나 한국 기업을 대표하는 재벌들은 세계적 추세와는 반대로 경쟁력을 스스로 깎아먹는 경영행태를 고집하고 있다. 공룡 멸종의 이치를 모르고 있음이다. 선단식 경영은 위험분산의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그보다는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 위험의 확대로 이어지기 쉽다. 계열사 하나의 부실은 다른 계열사의 연쇄부실을 낳게 된다. 재벌들은 될 만한 업종에 무분별하게 뛰어들었다. 금융·정보통신·유통업 진출이 두드러진 것도 바로 그러한 양상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다보면 과잉투자, 투자낭비를 일으킨다. 외형경쟁이 과열로 치닫고 그러다 보면 공멸의 길을 걷게 된다. 지금 자동차 산업이 바로 그런 꼴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양산업도 버리지 못하고 껴안고 있다. 중소기업 영역까지 무차별적으로 침범하고 있다. 산업구조 조정이 더디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문제는 재벌들이 돈을 빌려 기업을 확장하는데 있다. 해마다 재벌의 재무구조가 나빠져 가고 있다는 것은 기업 경쟁력이 그만큼 약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자기자본 비율이 상위 재벌도 20%이하로 떨어졌으며 하위 재벌은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심지어는 3% 수준 의 재벌도 있다. 은행돈을 재벌들이 과점하니 중소기업의 자금난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사업은 제 돈이 아닌 남의 돈으로 하라는 말이 있다지만 도가 지나쳤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를 한보사태와 삼미부도가 보여준다. 한보는 철강공장 건설을 위해 은행에서 빌린 돈을 기업확장에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주력업종인 철강이 부도를 맞았고 그룹이 해체될 운명에 처했다. 무분별한 확장과 차입 경영의 말로를 보여주는 교훈이라 할 것이다. 재벌들은 문어발을 자르는 노력을 통해 거듭나야 한다. 그 여력을 기술 개발등 경쟁력 강화부문에 투자하고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육성을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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