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 개설된 은행 계좌가 돈을 빼돌리는 범죄에 이용됐더라도 은행에 무조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15일 김모씨가 “신분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통장을 개설해 준 은행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며 낸 소송에서 은행의 책임을 70%로 인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남자가 지난 2001년 10월 은행직원이 신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상황속에서 박모씨가 분실한 주민등록증을 통해 A은행에 계좌를 개설했다.
이 남자는 일주일 뒤 텔레뱅킹을 이용해 미리 알고 있던 김씨의 B금융기관 계좌번호와 보안카드 비밀번호 등을 입력한 뒤 2,500만원을 박씨 명의의 A은행 계좌로 송금해 현금을 인출했다.
재판부는 “은행이 신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명의가 도용된 통장을 만들어 준 것은 맞지만, 그 계좌를 통해 원고 명의의 예금계좌에 대한 접근이나 인출이 가능하게 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은행의 주의의무 위반과 손해발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다면 은행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 같은 유형의 범죄행위로 발생한 피해에 대한 책임을 금융기관에 부담시킨다면 불특정 다수인이 자신의 책임 하에 행해져야 할 거래를 잘못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재산권 침해행위 등의 손해에까지 무차별적으로 금융기관에 책임을 추궁하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