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1월 4일] 외환보유액의 '적정 규모'

외환보유액이 2,700억달러를 넘어 사상 최대 규모로 늘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외환보유액이 적정 수준을 넘었다고 주장했다. KDI는 단기외채 총액의 1.3∼1.6배 정도가 적당한 규모이며 이는 지난해 8월 외채를 기준으로 볼 때 2,300억∼2,600억달러라고 밝혔다. 경제위기가 닥치면 상환기간이 1년 미만인 단기외채의 상환 압박이 커지는 만큼 단기외채 총액에 여유자금을 합친 금액이 적정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LG경제연구원ㆍ삼성경제연구소 등 민간연구소들은 적정 보유 수준을 3,000억∼3,400억달러로 훨씬 많이 잡는다. 민간전문가들은 만기 1년 이내 외채뿐 아니라 외국인 증권투자 자금의 30%와 최근 3개월 동안의 수입액에 해당하는 금액까지 외환으로 갖고 있어야 안전하다고 한다. 외환보유액이 너무 많으면 인플레이션과 자산 버블의 위험이 있다. 반면에 부족하면 외화자금 경색 및 디폴트가 우려된다. 외환보유액의 적정 규모는 얼마나 많은 외국 자금이 국내로 들어왔다가 위기시에 얼마만큼의 자금이 갑자기 빠져나가느냐에 달렸다. 자본을 통제하는 상황에서는 외환보유고가 비교적 적어도 어느 정도 외환위기를 회피할 수 있다. 지난 금융위기 이후 금융 시스템의 위험을 줄이는 방안으로 외환거래에 세금을 부과해 투기를 억제하려는 소위 '토빈세'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외환거래에 세금을 부과할 경우 환투기나 자본도피는 줄어들 것이다. 토빈세는 투기적 외환거래의 억제를 위해 외환거래의 수레바퀴가 너무 잘 굴러가지 않도록 약간의 '모래(세금)'를 뿌리자는 것이다. 특히 토빈세는 단기자본(핫머니)의 이동을 억제하는 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자본통제, 금융 규제ㆍ감독 등 자본이동을 억제하는 조치는 많다. 최근 국회는 은행이 새로 개발한 파생상품을 국내 기업들에 판매하기에 앞서 규제 당국의 사전 승인을 얻게 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오는 2013년부터는 파생상품에 거래세를 도입한다. 정부는 지난번 금융위기 때 수백개의 기업이 키코 등 복잡한 파생상품 거래로 막대한 손해를 입은 후 불투명한 장외파생상품(OTC) 시장을 단속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기관들은 자본 또는 파생상품 규제 등이 금융혁신을 저해하고 한국이 글로벌 금융 중심지로 도약하는 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반대한다. 올해부터 은행과 수출업체 등의 외환운용에 대한 감독도 강화된다. 국내 은행들의 외환 건전성을 높이고 외환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올 7월부터 은행들은 외화자산의 2% 이상을 A등급 이상 국공채 등 안전자산으로 보유해야 한다. 또 은행들이 단기 외화자금을 빌리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중장기 재원조달 비율 규제를 강화한다. 수출기업들의 과도한 선물환 거래를 막는 방안도 마련한다. 이러한 조치들로 투기적 외환거래는 어느 정도 진정될 것으로 기대된다. 투기자본 통제와 관련해 KDI는 외환보유액이 이미 적정 수준을 넘어선 이상 자본의 급격한 유출에 대비하는 통제수단을 새로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브라질이 자국 증권에 투자하는 외국인에게 2%의 거래세를 매기기로 한 것을 계기로 자본통제 방안이 인도네시아ㆍ러시아 등지로 확산되는 분위기지만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이 독자적으로 자본의 이동을 막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환보유액이 넉넉해서 자본통제나 토빈세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지, 자본이동을 위축시키는 규제ㆍ감독 조치가 강화되기 때문에 과도한 외환보유액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인지 구분하기는 어렵다. 과열된 시장에서 버블을 식별하기란 버블을 막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가격이 빠르게 상승한다고 해서 이것이 버블의 결정적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의 외환보유고가 적정 규모인가를 판정하는 것도 적정 수준의 외환을 보유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자본통제나 토빈세, 각종 금융 규제ㆍ감독을 줄이고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방법과 외환보유액을 줄이고 각종 규제 등으로 대체하는 것 등 두 방안을 비용 효율 면에서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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