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경기 썰렁한데 백화점은 "설 특수"
김현수 기자 hskim@sed.co.kr
성행경 기자 saint@sed.co.kr
서울 테헤란로의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지난 1월 말까지의 설 매출이 지난해 설 때보다 87.3%나 늘어났다. 45만원짜리인 제주흑한우 정육세트는 이미 품절됐다. 최보규 식품팀장은 “설 매출이 예상보다 급증해 우리도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주가급락에다 생활물가마저 급등하면서 일반인들의 체감경기는 썰렁하기만 하지만 백화점의 설 선물 판매현황을 보면 상황이 전혀 다르다. 오히려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직원들조차 의아해할 정도로 상품권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고가 선물세트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특히 상품권 판매는 사상 최대의 명절 실적을 낼 것으로 보인다. 롯데백화점의 상품권 매출은 1월30일까지 2,300억원을 기록, 지난해 설 때보다 45%나 급증했다. 롯데백화점은 이번주 말 판매가 마무리되면 상품권 판매 이후 처음으로 3,000억원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고가 상품권은 조기에 동이 났다. 롯데백화점이 올해 첫 선을 보인 100만원권 ‘福 상품권’은 준비한 1,000세트가 1월21일 이미 품절됐고 1,000만원권 프레스티지 상품권도 2,000세트가 모두 팔렸다.
신세계백화점도 비슷하다. 1월31일까지 상품권 판매로만 지난해 설 때보다 18% 늘어난 1,8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고가 선물세트 판매도 당초 예상을 웃돌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준비한 80만원짜리 프리미엄 특선 암소한우세트는 일찌감치 품절됐고 신세계백화점의 75만원짜리 목장한우세트도 1월28일 모두 팔렸으며 현대백화점이 200세트 한정상품으로 내놓은 ‘명품한우 매(梅)호(60만원)’도 설 연휴 시작 열흘 전에 이미 171세트가 다 팔렸다.
이 같은 판매호조의 공통적인 현상은 기업 고객이 크게 늘었다는 것. 삼성특검과 행정조직 개편에 따라 기업 판매가 위축될 것으로 우려했던 당초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실제 기업 특판을 담당하는 현대H&S는 올해 설 선물 매출이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의 경우도 올해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 선물 판매 중 49%가 신규로 상품을 구매한 기업들이다.
고가 상품권 역시 기업들이 주로 사고 있다는 게 백화점 관계자의 전언이다. 롯데백화점은 상품권 구입고객의 80%(지난해 70%) 이상이 법인고객이며 1인당 구매 금액도 지난해보다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기업들의 구매가 크게 늘어난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신헌 롯데백화점 상품본부장(전무)는 “예년보다 고가 상품의 매출이 늘어난 것은 새 정부 출범 이후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백화점 관계자는 “기업들의 지난해 실적이 호전돼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긴데다 대선 이후 사회적 분위기도 적당한 가격의 선물을 용인하는 쪽으로 변화하면서 기업들의 구매가 늘어난 것 같다”고 해석했다.
또 개인들의 올 설 지갑이 얇아지면서 상대적으로 기업구매가 두드러졌을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주가가 급락하는 가운데 지난해 8월부터 정부가 세금을 덜 걷고 덜 돌려주는 방식으로 제도를 바꾸면서 연말정산 환급금이 크게 줄어들고 기대했던 설 보너스도 감소해 직장인의 구매가 위축된 데 따른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설 보너스 대신 상품권과 선물로 주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도 한 이유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박종남 대한상공회의소 조사2본부장은 “친기업적인 정부의 정책방향에 기업들이 활력을 되찾고 있는 신호로 보인다”며 “이러한 활력이 기업들의 투자 증대로 이어지면 침체된 소비경기도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