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변함없는 인간관계

‘세밑 추위가 지난 뒤에야 소나무ㆍ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 몇 년 전에 현직에서 은퇴한 지인으로부터 받은 카드에 적혀있던 논어(論語)의 자한(子罕)편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은퇴 후 찾아주는 이 없는 세상의 각박한 인심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며 필자와의 변치 않는 정에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그 구절을 통해 인간관계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한 여름에 푸르고 왕성하지 않은 나무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서 보듯 엄동설한이 돼 봐야 어느 것이 푸른 빛을 잃지 않는지 알게 된다.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다보니 잘 나갈 때야 주변의 무리들이 자기 이해관계를 따져가면서 모든 것을 다 내줄 듯이 다가오지만 외롭고 힘들 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은 많지 않다. 친구와의 우정이나 사회적인 인간관계는 겉으로 드러나거나 단기간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을 공유해야 하고 때로는 이견이 있어도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추억이 될 만한 일을 함께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래도록 고락을 같이 하며 변치 않는 ‘꾸준함’이다. 특히 잘 나갈 때보다는 어렵고 외로울 때 서로의 처지를 헤아려주는 한결같은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주변 지인들이 현직에 있을 때보다 은퇴한 후에 더욱 잘 챙기려고 노력한다. 수십년간 정열을 바쳐 사회적인 소임을 마친 후 형언하기 힘든 허전함과 고독감을 느낄 때 먼저 연락하고 다가감으로써 오랜 인연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퇴임 후 소일하시는 선배들에게 전화해 식사를 대접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젊은 시절에 느끼는 우정은 여름날의 시원한 생맥주처럼 경쾌하고 청량하지만 거품이 많을 수 있다. 그나마 요즘 젊은이들은 인터넷과 사이버 공간에 빠져들어 아예 친구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친구와 토론하거나 운동하는 일보다는 인터넷 게임ㆍ인터넷 쇼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하지만 세월의 연륜이 쌓인 정은 막걸리처럼 텁텁하지만 그 맛이 깊다. 친구 간의 끈끈한 정이 눈에 보일 리 없다. 그러나 춘추시대의 거문고 명장이던 백아가 자기 음악을 알아주던(知音) 종자기가 세상을 뜨자 거문고 줄을 끊은(伯牙絶絃) 것처럼 겉으로 보이는 멋은 없지만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변해도 앞과 뒤가 한결같은 것이 군자들 간의 친교이자 우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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