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재벌개혁, 행정개혁, 사법개혁, 언론개혁, 교육개혁, 규제개혁, 재정개혁, 금융개혁, 국방개혁, 노동개혁… 역대 정부들이 추진했던 개혁 내용이거나,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던 위원회 명칭들이다. 문민정부는 더 나아가 `의식개혁`도 추진했다. 가히 우리는 `개혁공화국`이라고 할만하다.
가까이는 5공 정권부터, 멀게는 5.16 쿠테타 이래 우리는 많은 개혁을 해왔다. 재벌개혁은 30년이 됐고 교육ㆍ규제ㆍ행정ㆍ정치개혁도 20년은 넘었을 것이다. 이 만큼 개혁했으면 개혁이란 말이 사라질 때가 됐건만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개혁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 왜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학자들은 개혁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고, 정치인들은 개혁대상의 반발과 개혁전선의 확대를, 국민들은 정부의 개혁의지 부족과 개혁의 불철저를 든다. 그러면 왜 개혁시스템이 구축되지 않고, 개혁을 철저히 추진하지 못했을까?
우리가 개혁하려는 것은 다양성을 가로막는 획일성, 권한은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태도, 봉사보다 군림, 바깥에서 보기 어려운 불투명성, 끼리끼리 노는 배타성,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는 경직성, 경쟁대신 적당한 선에서의 타협 등일 것이다. 즉 개혁의 지향점은 투명, 책임, 경쟁, 유연 등이다.
그런데 그간의 개혁은 늘 재벌, 정치, 행정 등과 같은 기득권층을 대상으로 했다.
개혁이 미흡하면 있는 제도는 두고 또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였다. 제도는 우리가 고민해서 찾아낸 것이 아니라, 선진외국에 있는 것들이었다. 달성하여야 할 목표수준이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절차는 제시되지 않았다. 즉 무엇을 개혁할 것인지에 급급하여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는 고민하지 못했다.
결과는 어떤가? 특정분야만 대상으로 한 결과 이들의 반발을 이겨내거나 개혁에 동참시키기가 어려웠다. 개혁대상으로 지칭된 분야에도 타의 모범이 되고 개혁을 선도할 부류도 적지 않으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개혁하려는 문제는 여러 분야에 있는데 일부 분야만을 개혁하려고 하여 모두가 개혁지향점으로 나아가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어렵게 했다. 이전 정부가 도입한 제도는 두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고 하니 모두 개혁에 쉬 피로를 느꼈다. 도달할 목표 수준이 명확하지 않아 많이 개혁했지만, 평가가 분분하여 분쟁을 초래했다. 외국 제도를 도입하니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았고, 당사자들은 제도를 준수하려고 하지 않고 회피할 궁리도 하게 됐다.
개혁을 더 잘 하기 위해서는 그간의 경험을 교훈삼아 개혁방법을 한 차원 높여야 할 것이다. 먼저 개혁명칭부터 바꿔봄직하다. 재벌개혁, 행정개혁과 같이 개혁대상을 지칭하는 방식에서 `투명성 혁신`이나 ㆍ`책임성 제고`와 같이 목표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목표를 정한 후 사회 각 분야가 개선해야 할 과제와 달성방법을 정하고 이를 한꺼번에 추진한다면 개혁에 대한 반발도 막고 시스템을 구축하여 개혁효과도 높일 수 있다. 꾸중보다는 칭찬이 더 효과적이듯, 개혁도 부정적인 명칭을 사용하기 보다 긍정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둘째 효과적인 정책수단을 찾아내야 한다. 아무리 목표가 좋더라도 이를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면 그 목표는 별 의미가 없다. 정책수단은 비용이 적게 들면서 목표를 쉽게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은행창구에 혼잡이 해소된 것은 고객들에게 줄서기를 강요하거나, 은행이용 시간을 분산시키려는 임직원의 설득이 아니다. 그저 순서에 따라 번호표를 나눠주는 조그만 기계가 이를 해결했다. 우리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은 이 같은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문제가 있으니 어떤 방법으로든 막자는 발상은 야간에 범죄가 늘어난다고 하여 야간통행을 금지시키려는 것과 같다.
셋째 개혁의 목표수준을 미리 정해야 한다. 투명성, 유연성 등 우리가 추진하는 개혁의 지향점은 추상적이어서 보는 각도에 차이가 크게 나는 사안들이다. 각자의 시각에서 결과를 보면 아무리 개혁하더라도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미리 정하여 목표에 도달한 분야는 개혁이 완료되었다고 선언한다면 모두 자긍심을 갖게 되어 추후 개혁을 용이하게 할 것이다. 법으로 규정한 목표는 가급적 낮게 잡고, 그 이상은 자율적으로 달성토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넷째 있는 제도부터 잘 활용해야 한다. 제도가 많으면 정부가 있는 제도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해 제대로 준수한 자의 불만만 야기한다. 최적의 수단을 찾아낼 때까지는 기존제도부터 제대로 집행하도록 해야 한다.
인수위가 종래의 개혁명칭 대신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러한 방향전환으로 보여 앞으로 기대되는 바가 크다.
<申鍾益 (전경련 상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