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클릭] CDS설계사


블라이드 마스터스는 영국 켄트 출신으로 꿈 많은 말괄량이 10대 소녀였다. 1987년 그는 미국의 대표적 금융기관인 JP모건은행에 인턴으로 들어갔다가 파생금융상품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마스터스는 정식 입사하자마자 금융상품 개발자로서 숨겨진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1990년대 팀 동료들과 함께 전혀 새로운 형태의 신용 파생상품인 '신용부도스와프(CDS)'를 만들어낸다.


원리는 간단하다. 예를 들어 A 금융회사가 한 기업의 회사채를 구입한다고 치자. 문제는 여기에 따라붙는 신용 리스크다. 회사가 망하기라도 할 경우 채권매입 금융사는 막대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때 다른 보험사나 은행이 보험료를 받고 원금을 보장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뽀빠이 상품이 바로 CD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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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들은 이런 리스크 분산책을 철저히 악용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를 토대로 한 주택저당증권(MBS)이나 부채담보부증권(CDO) 등 엄청난 양의 부실채권을 사들이면서도 CDS를 방패막이 삼아 장부외(帳簿外)거래로 분류, 자본 건전성 규제를 벗어났던 것이다. 미국 보험사 AIG 역시 CDS를 마구잡이로 팔아 톡톡히 재미를 봤으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각종 채권상품들이 부실화하자 2008년 한 해 동안 무려 1,000억달러 가까운 배상손실을 입었다.

개발 이후 한동안은 리스크 분산의 회심작으로 높이 평가받았던 CDS도 금융위기가 닥치자 '대량살상무기'로 매도당하면서 모든 악의 출발점이라는 가혹한 취급을 받아야 했다.

이 CDS 개발의 주역이었던 마스터스가 지난주 말 JP모건체이스은행에 사표를 냈다. 규제당국이 JP모건의 원자재 거래사업에 대한 시세조작 혐의를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마침 그가 이 부서의 책임자로 있었던 것이다. 한때나마 월스트리트가 혁신 영웅으로 떠받들던 마스터스의 퇴장 모습이 꽤나 쓸쓸해 보인다. /이신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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