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Yuna Kim. I'm a figure skater, and I represent the Republic of Korea(김연아입니다. 한국 국가대표 피겨 선수입니다)". 세계 대회에 나가거나 해외 언론과 인터뷰할 때면 '자동'으로 나왔던 김연아(24)의 자기소개다. 21일(이하 한국시간)을 끝으로 이런 자기소개를 더는 들을 수 없다.
여섯살 때 처음 스케이트를 신었던 김연아가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세계 대회에 나갔던 게 열두살.
21일 0시부터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리는 소치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은 김연아의 13년 국가대표 생활을 마무리하는 무대다. 길게는 19년 피겨인생을 4분10초로 정리하는 셈이다.
이날 프리 연기가 이어질 4분여 시간은 어느 때보다 짧게 느껴질 것 같다. 역대 가장 위대한 여자 피겨 스케이터로 기억될 김연아. 그는 이 시간이 지나면 '한국 국가대표 피겨 선수'라는 자랑이자 짐을 영원히 내려놓는다.
◇탱고로 일으킨 신드롬, 탱고로 아디오스= 김연아는 '탱고'로 마지막 인사를 한다. 프리 연기 때 몸을 맡길 음악은 아르헨티나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1959년 만든 '아디오스 노니노'. 피아졸라가 아버지를 여읜 뒤 만들어 탱고 특유의 열정과 깊은 슬픔이 조화를 이룬 명곡이다.
김연아는 "아버지를 향한 추모곡인 만큼 그리움과 아버지와의 행복하던 시절을 회상하는 감정을 담았다"며 "쉬는 부분이 전혀 없어 힘든 프로그램이지만 잘했을 때 그만큼 좋은 프로그램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김연아는 아디오스 노니노로 지난해 12월 골든스핀오브자그레브 대회(크로아티아)에서 131.12점, 지난달 국내 종합선수권에서 147.26점을 기록했다.
김연아는 시니어 무대 데뷔 시즌인 2006-2007시즌에도 탱고 곡을 들고 나왔었다. 당시 곡은 '록산느의 탱고'. 이때의 쇼트 프로그램은 특히 인기가 많았다. 김연아는 소치올림픽 출전을 결심한 뒤 첫 아이스쇼(2012년 8월)에서도 록산느의 탱고에 맞춰 연기했었다. 이번에도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탱고로 피날레에 나서는 것이다.
연기 과제가 7개인 쇼트 프로그램과 달리 프리는 12개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게 관건. 특히 피겨 선수로서 '노장'에 가까운 데다 최근 오른발 부상도 있었던 김연아로서는 중반 이후 과제들을 실수 없이 해내느냐가 올림픽 2연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연아는 올림픽을 앞두고 두 차례 모의고사에서 미세한 실수가 있었다. 지난해 12월 골든스핀 대회 때 마지막 과제인 체인지풋 콤비네이션 스핀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후반부 들면서 스핀의 속도가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지난달 종합선수권에서는 7번째 과제인 더블 악셀-더블 토루프-더블 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에서 마지막 루프 점프를 뛰지 못했다. 11번째 과제인 더블 악셀 점프도 1회전으로 처리했다. 김연아는 "더블 악셀 실수는 체력적인 문제 때문은 아니다"면서도 "점프 실수는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것"이라며 올림픽에서 나올 수 있는 작은 실수를 경계했다.
◇결과에 얽매이지 않겠다=김연아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홈페이지에 올라온 인터뷰에서 중요한 말을 했다. 그는 "올림픽 챔피언이라는 목표는 이미 이뤘기 때문에 마지막 대회가 될 소치올림픽에서 제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경기를 하면 된다"며 "결과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편안하게 마지막 경기를 즐기고 싶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음 비우고 경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연아는 "어릴 때부터 밴쿠버올림픽이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는 밴쿠버를 끝으로 은퇴하려던 원래의 계획과 올림픽에서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국민의 바람 사이에서 오랜 기간 고민하다 다시 힘든 길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여자 싱글 사상 첫 그랜드슬래머(올림픽, 세계선수권, 4대륙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 제패)인 김연아는 이번 대회 결과와 관계없이 이미 '불멸의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