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잃어버린 가족을 찾습니다

웬만한 기업에는 회사의 근황과 임직원의 경조사 등을 알리는 사보가 있다. 회사마다 그 운영형태는 다양하겠으나 대개 CEO(최고경영자)의 메시지부터 직원과 직원 가족들의 글까지 소개하면서 사보는 임직원 간 신뢰와 일체감을 키우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 주말 그간 미뤄놓은 책장 정리를 하다가 오래 전 다녔던 직장의 사보 한 편이 눈에 띄었다. 아내의 글이 실린 기념으로 버리지 않고 보관해 두었던 모양이다. ‘○○가족’이라는 사보 제목부터 반가웠다. 가족? 아, 가족. 그때는 CEO의 훈시에도 ‘○○가족 여러분’이 지겨울 정도로 반복됐고 인사 동정도 ‘○○가족 동정’, 사내 체육대회도 ‘○○가족 한마음 체육대회’였다. 사실 집보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은 만큼 피만 안 섞였지 사실상 동료는 가족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늘 회사를 에워싸던 ‘가족’이라는 호칭이 어느 순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렸다. 아마 외환위기가 분수령이 됐던 것 같다. 당시 어려움에 처했던 많은 기업들이 뼈를 깎는 노력의 수단으로 구조조정과 인력감축을 감행했고 그 결과 ‘가족’은 해체됐다. 이미 지난 일이라고는 하지만 언제든 재현될 수 있는 까닭에 그때의 ‘가족’해체가 과연 최선이었는지 묻게 된다. 좋은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첫째, 여러 대안들을 생각해봐야 하고 둘째, 정한 대안으로 인한 이익과 그 실행 비용을 냉철히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분석적 사고방식은 이러한 면에서 본질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분석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분석하기 쉬운 것만 다루기 때문에 의사결정에 필요한 다양한 측면을 경시하기 쉬운 것이다. 인원감축과 관련된 결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원감축으로 인한 분명한 혜택보다 이후 장기적으로 치러야 하는 비용이 모호하고 계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금이야 명예퇴직과 인력감축이 일반화됐다지만 90년대 전만 해도 조직운영의 근간은 공동체 의식이었다. 장기적 관점에서 고용 보장을 지향했고 개인보다는 집단의 성과를 중시했다. 따라서 기업도 직원을 선발할 때 미래의 임원과 사장을 뽑는다는 생각으로 했고 개인 또한 한 번 직장이 평생직장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랬던 관행이 개인은 언제든 기업을 떠날 수 있고 기업도 필요에 따라 미련 없이 직원을 해고할 수 있다는 계약관계로 변질됐고 이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구조조정과 명예퇴직이 일상화되고 평생직장 대신 평생직업이라는 개념이 정착돼버린 결과 기업이 지불해야 할 비용은 무엇일까? 우선 가장 빈번하고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 기업기밀 유출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기술유출이 쉬워지기도 했지만 회사의 발전으로 개인이 성장한다는 과거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지난 1~2년만 해도 반도체의 핵심기술, 고부가 후판 제조기술, 차세대 와이브로(WiBro)기술 유출 등이 보도된 바 있다. 기업체는 과거에는 필요치 않던 부담을 짊어지게 됐다. 이중 삼중의 보안시스템을 구축하고 직원들을 감시해야 하며 별도의 보완 관련 교육을 실시해야 하는 등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직원의 회사에 대한 충성심 상실과 직무몰입도 저하, 그리고 그에 따른 생산성의 저하이다. 생산성 향상은 다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직원 개개인의 마음가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라인 근로자의 자잘한 개선 열의가 없다면 도요타는 있을 수 없으며 고객의 불편을 바로 신제품 개발의 아이디어로 활용하는 영업사원이 없다면 3M의 혁신 제품도 태어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일본의 캐넌(Canon), 혼다(Honda), 교세라(Kyocera) 등 초우량 장수 기업들은 평생고용의 전통을 꿋꿋이 이어오고 직원의 열정과 헌신을 이끌어내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새해부터 미국의 서브프라임 문제가 악화되면서 우리 경제에도 어두운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몇몇 기업체 CEO들은 벌써부터 조심스럽게 구조조정과 명예퇴직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외환위기 이전 기업과 직원이 일체감을 가지고 일했던 ‘○○가족’의 추억과 득실을 꼼꼼히 생각해보고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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