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아그룹<마닐라 근교 비쿠탄 공장>(한국기업의 21세기 비전)

◎프라이드 필리핀 공략 “스톱은 없다”/신속한 AS·오토 조립… 현지 국민차시장 99% 점유/농촌용 「세레스」도 인기… 동남아진출 교두보 가속필리핀 시장에 뛰어든 기아자동차의 수출팀은 기아자동차가 처해있는 시련을 아랑곳 않는다. 그것만이 살길이자 고통을 잊는 길이라는듯 땀을 흘릴 뿐이다. 마닐라 남쪽 교외인 파라나크지역 웨스트 서비스가 16번지.2만평 규모의 넓은 공장정문에는 「콜럼비아 자동차회사」(COLUMBIAN AUTO CORPORATION)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얼핏 미국이나 남미의 회사같은 이름이지만 필리핀의 3대 자동차공장이자 순수한 필리핀자본으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자동차회사다. 아직 외국에서 부품들을 들여와 조립하는 수준이나 여기엔 필리핀 자동차산업의 미래가 걸려있다. 이 지역의 또 다른 명칭에 따라 「비쿠탄 공장」으로 통용되는 이 공장의 안으로 들어가 보면 간판이름과는 달리 닛산, 마즈다, 다이하쓰 등 일본차에다 유럽의 BMW와 나란히 기아자동차의 프라이드 조립라인이 움직이고 있다. 『프라이드는 필리핀의 국민차시장을 독점하고 있어요. 몇% 냐구요? 글쎄요…딱 떨어지는 수치를 댈수는 없지만 99%라고 보면 됩니다』. 기아자동차써비스 필리핀주식회사 이두희 부사장의 설명이다. 본사에서 과장급인 이부사장은 기아와 콜럼비아자동차사가 합작으로 설립한 아프터서비스공장을 사실상 책임지고 있으며 한달전까지 필리핀의 유일한 기아맨이기도 하다. 이부사장의 자랑이 아니라도 필리핀에서 프라이드자동차의 존재는 마닐라공항에 내리는 순간 눈에 들어온다.공항로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는 프라이드로 한국의 어느 지방도시에 온듯한 기분마저 든다. 그래서 필리핀을 처음 찾는 한국인 여행자들은 지금껏 무심했던 「프라이드」라는 이름을 곰씹게 된다. 프라이드―. 10년전 소시민용의 차로 출고될 때부터 이 차는 「자랑」이라는 뜻의 프라이드와는 인연이 없었다.몇년전에는 고급차에게 길을 비켜주지않다가 『프라이드가 감히 길을 비키지않았다』며 운전자가 도로의 화단석에 머리를 맞은 뒤부터는 「셰임」(수치)이 걸맞게 됐다. 『프라이드는 이곳에서 완전히 제 이름값을 찾고있어요. 외국여행이 처음인 한국인 여행자들은 공항에서 이 차를 보자 자신이 생긴다고들 합니다.』 이부사장은 필리핀사람들에게도 프라이드가 여러가지로 자랑꺼리라고 선전이다. 국민차라고는 해도 아직 국민소득 1천2백달러인 이곳에서 마이카족이 된다는 것이 자랑스러우리라는 것은 짐작할만 하지만 이 차를 갖지 않은 필리피노들에게도 프라이드는 좋은 인연을 맺고있다는 것이다. 프라이드가 필리핀에서 국민차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으로 마르코스가 물러난지 4년뒤. 필리핀경제가 오랜 부패독재의 폐해를 딛고 마악 활기를 찾기 시작하던 시점이었고 프라이드의 보급대수는 필리핀의 경제성장 그래프와 동반해서 올라갔다. 1990년까지도 제자리 머물던 필리핀의 경제성장율은 91년 0.40%, 92년 1.03%, 93년 2.29%,94년 5.10%, 95년 5.70%,96년 6.40%로 가파르게 치솟았고 프라이드보급대수도 굴곡은 있었지만 90년 2천3백대,91년 4천3백대에서 95년에는 7천4백대로 필리핀 승용차시장에서 9.1%의 점유율을 기록하기도 했다.한마디로 프라이드의 매출은 필리핀의 자존심과 더불어 성장한 것이다.그것은 본국에서 기아가 현재 처해있는 상황과도 무관하다. 『그러나 필리핀의 경제성장이 반드시 호재만이 아니라는데 수출의 어려움이 있읍니다.최근에는 필리핀에서도 큰 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지난해는 프라이드의 수출이 5천대로 떨어졌어요.점유율도 9.1%에서 5.6%로 낮아졌고요.그래서 본사에서는 비상이 걸렸읍니다.』 기아본사의 KD(조립생산)수출부 필리핀담당 권오균씨는 그래서 오토장치를 첨가하는 등 여러가지 비상수단을 동원하자 반응이 좋아 올해는 7천5백대(시장점유율 10%)의 수출이 무난할 것같다고 내다보았다. 기아는 프라이드외에 농촌용다목적차 세레스를 역시 조립생산형식으로 89년부터 수출하여 지난해는 2천6백60대를 팔았으며 완전차로는 베스타,프레지오,스포티지왜건 등을 지난해 2천6백대 팔았으나 올해는 1만6백90대로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기아가 마치 태평양전쟁에서 처럼 「일본군」(자동차사)에게 점령된 필리핀시장에서 교두보를 확보할수 있었던것은 1989년 콜럼비아자동차와 손을 잡은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콜럼비아자동차는 원래 필리핀남부에서 유럽자동차를 판매하던 회사.그것을 현재의 호세 알바레스회장이 1981년에 인수함으로써 이 자동차사는 자동차의 판매뿐 아니라 세계굴지의 자동차를 조립생산하는 오늘날의 복합자동차회사로 발돋움하게 됐다. 『세레스는 우리나라에서 농촌용 다목적차로 용도가 제한돼 있어 도시에서는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그러나 필리핀에서는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다목적이 아니라 만능차같이 쓰이지요.』 원래 세레스는 농촌에서 농산물 등속을 실어나르는 화물차의 성격이 강했지만 이곳에서는 뒤켠을 여러가지로 개조해 앰불런스로 까지 사용하고 있다.세레스 앰불런스는 94년부터 앰불런스시장을 사실상 독점해왔으며 최근에도 1천대를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세레스가 조립되는 라구나공장의 야적장에는 수백대의 앰불란스가 3천평의 공간을 채우고있다. 『어느 시장이나 마찬가지지만 필리핀에서도 현지의 특성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주효했지요.농촌용차가 앰불런스로 변신한 것도 그 일환입니다.기아가 필리핀시장에서 뿌리를 내리는데는 콜럼비아와의 합작이 큰 계기가 됐지만 우리보다 여건이 좋은 일본의 텃세를 뚫고 거점을 확보하기위해 우리는 우리만의 강점을 살리려는 노력이 주효했어요.』 이씨는 필리핀유일의 기아맨이 수출담당이 아니라 아프터서비스부문이라는 것도 그런 전술의 일환이라고 말한다. 『모든 수출에서 아프터서비스는 중요하지만 특히 소득수준이 낮은 나라에서의 자동차 수출은 아프터서비스경쟁으로 판가름나게 돼 있읍니다.』 소득수준이 높은 나라에서의 아프터서비스는 차라리 쉽다.열대지방이어서 곧잘 과용으로 고장이 잘나는 에어컨만해도 고장이 나면 통째로 교환해주면 된다.그러나 소비자의 부담을 신경써야하는 이곳에서는 최소한의 부품교환이 인기고 그래서 최대한의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기아는 그래서 3년전 콜럼비아와 합작으로 서비스공장을 설립하고 이씨가 부사장으로 부임했다. 사장은 J.C.알바레스씨. 직원 1백 3명의 이 회사는 필리핀에서 처음으로 기아의 간판을 내건 회사이자 이부사장은 필리핀에 상주하는 유일한 기아맨이 됐다. 『세계 모든 자동차시장이 다 그렇지만 필리핀시장에서의 경쟁도 갈수록 숨가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일본메이커들만도 벅찬데 미국의 빅3도 진출을 서두르고 있어요. 국내에서 기아는 지금 엄청난 시련을 당하고 있고 그 귀추도 알수없지만 우리의 과제는 우선 이곳 싸움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필리핀은 2차대전에서 미군이 탈환한후 유황도 상륙작전등의 거점이 됐듯 우리는 이곳을 동남아시장진출을 위한 거점으로 키워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마닐라=양평 특파원> ◎인터뷰/이두희 비 기아자써비스 부사장/“부품공급 가장 애로… 인터넷 주문·24시간 가동체제 추진” 『일본의 자동차사들이 미국시장을 공략할때 아프터서비스를 앞세웠지 않았읍니까. 그런데 필리핀시장에서는 우리가 그들의 텃세를 뚫는데 아프터서비스를 이용했읍니다.』 마닐라의 남쪽도심부인 파사이구 오로라가 2316. 필리핀에서 기아자동차가 유일하게 간판을 내건 기아자동차써비스(주)가 「KIA SERVICE PHILS. CORP.」라는 영문간판으로 숨은듯 일하고있다. 간판뿐 아니라 안에도 가무잡잡한 피부의 현지인직원들에 가려진채 이두희 부사장이 땀을 흘리고 있다. 수출의 현장이라면 엄청난 생산공장이 돌아가야 제격인데 고작 수출의 설거지격인 아프터서비스냐는 일반의 인식이 못마땅하다는듯 그는 아프터서비스가 수출의 하수도가 아니라 상수도에 해당한다고 강조한다. 『열대지방이어서 이곳에서는 에어컨이 무리로 고장을 자주냅니다. 한국에서는 고장도 드문데다 삼복이 아닌한 그리 급하지 않지만 이곳에서 에어컨고장은 엔진고장이나 다름없어요. 어차피 쓸수없으니까요. 그래서 생산공장의 문이 닫히는 밤에도 서비스공장의 문은 열어두려고 교섭중입니다.』 그는 24시간 서비스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프터서비스 공장의 문을 24시간 열어놓는 것은 일반 생산공장의 경우보다 더 어렵다는데 고민이 있다. 생산공장이 주어진 계획대로 부품을 공급받아 조립하는 과정이라면 아프터서비스는 마치 게릴라공격을 받듯 예상치 못한 부위의 고장을 다뤄야하고 그래서 예상외의 부품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여기서는 에어컨을 통째로 교체할때의 비용을 부담스러워해요. 그래서 되도록 소규모의 부품교체를 해주려하는데 그 부품을 한국에서 실어다 갖춰놓기가 여간 힘들지않습니다.』 이부사장은 그래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방안을 본사와 협의중이라고 말하고있다. 그러나 그가 현재 본사와 협의하고 있는 현안은 베트남에 이같은 합작서비스공장을 설립하는 문제다. 앞으로 기아호가 어디로 가게 되건 24시간 열려있는 값싼 아프터서비스공장이 무역장벽을 뛰어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며 그는 입을 다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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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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