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4월 28일] 고개 숙인 애널리스트

"우리는 을(乙) 중의 을입니다." 최근 증권업계의 B 애널리스트는 술자리에서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그는 최근 기업 분석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대기업 IR팀을 방문했는데 IR팀 직원에게 협박이나 다름없는 말을 들었다. IR팀 직원은 " A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쓰는 보고서는 지나치게 부정적"이라며 "그 애널리스트에게는 앞으로 제대로 협조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B 애널리스트는 "증권사 연구원들은 IR팀으로부터 정보를 얻기 때문에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쓰기가 조심스러워진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외국계인 M 증권사에 재직했던 애널리스트에게는 더욱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해 M 증권사 소속 D 애널리스트가 특정 대기업 주식에 계속 '매도' 의견을 내자 해당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M 증권사 회장에게 여러 차례 항의했다고 한다. 오비이락인지는 몰라도 D 애널리스트는 M 증권사를 떠나고 말았다. 애널리스트의 분석보고서는 주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기업에 대한 왜곡되지 않은,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애널리스트를 둘러싼 환경은 기업 분석보고서의 신뢰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일부 대기업들은 긍정적인 분석보고서를 이끌어내기 위해 애널리스트들에게 '무언의 압략'을 행사하기도 한다. 더욱이 증권사들이 최근 애널리스트들에게 '영업'을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분석'의 영역이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분석보고서를 통해 투자자에게 좋은 정보를 주는 것보다 기관투자가에 고급 정보를 제공하는 게 보다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국내 증권업계의 기업 분석보고서에 '매도' 의견이 없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애널리스트를 둘러싼 환경이 만들어낸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투자자들은 분석보고서를 외면할 수밖에 없다. 애널리스트는 물론 증권사들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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