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관치금융 망령」 되살아나나/재경원·검찰 은행장인사 노골적 개입

◎한보파장 탈출위해 「힘없는 은행」 희생양/행장승인 석달만에 중도퇴진 “자율 상실”관치금융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검찰이 은행장 인사에 대해 월권적 간섭을 서슴지 않는가 하면 재정경제원은 시중은행 인사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자격심사권을 가진 은행감독원은 눈치보기로 일관, 원칙없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작년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을 계기로 금융 자율화와 선진화를 이루자고 입을 모은데 이어 특히 올들어 한보사태가 터지자 관치금융의 잔재를 몰아내자고 각계가 다짐했건만 결국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말았다. 금융개혁도 관계당국간 「밥그릇 싸움」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금융선진화의 양대축을 이루는 인사개혁과 제도개선이 채 빛도 발하기 전에 사그라들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특히 정부의 일관성없는 은행장 선임기준과 노골적인 인사개입은 금융계에 큰 혼란을 불러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다. 검찰은 장만화 서울은행장에 대해 특별한 혐의가 없다면서도 사임압력을 넣고 있다. 이 경우 같은 처지에 있는 장철훈 조흥은행장도 타격을 받게 된다. 검찰의 이같은 행위는 논리적 당위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법적·제도적 근거도 없다. 이는 나쁜 선례가 돼 또다시 정치적 이해에 따라 은행인사를 좌지우지하는 소위 「정치금융」을 배태시킬 가능성이 높다. 검찰의 월권적 행위를 앞장서 막아야 할 재정경제원은 이에 굴복, 「한보관련 임원 은행장 불가원칙」을 뒤늦게 세웠다. 재정경제원이 한보사태의 파장을 피하기 위해 힘없는 은행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비난이 강하게 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재경원은 이를 기화로 은행장 인사에 적극 개입, 관치금융을 부활시키고 있다. 시장주의자로 자처하던 강경식 경제부총리의 경제철학과 신뢰성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은행감독원은 한보관련 은행임원들에 대해 느슨한 징계를 내린데 이어 은행장 선임에 대해서도 「하자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가 뒤늦게 이를 스스로 번복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한보관련 임원 은행장 불가원칙」이 적용될 경우 은감원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문책인사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재정경제원과 은감원의 한보관련 감독책임도 함께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한편 은행들은 지난 3월 주총에 이어 석달도 안돼 또한차례 인사회오리에 휘말리게 됐다. 한보관련으로 은행감독원의 징계를 받은 현직 은행장은 김시형산업은행총재, 장명선 외환은행장, 장만화 서울은행장, 장철훈 조흥은행장 등 4명. 이 가운데 김총재와 장외환은행장은 본인이 스스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자퇴한 케이스며 장서울은행장은 당국의 직접적인 사퇴압력을 받고 있다. 산은총재에는 이미 김영태 담배인삼공사 사장이 내정됐으며 외환은행장 후임에는 홍세표 한미은행장이 사실상 내정단계에 있다. 한미은행장에는 문헌상 수출입은행장이, 수출입은행장에는 이철수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두가 재정경제원의 「작품」이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엄연히 시중은행인 외환은행과 한미은행에 대해서까지 재경원이 노골적으로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외환은행은 한국은행이 47.88%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이번 행장내정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으로 알려져 재경원과 한은간 「힘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줬다. 더욱 가관은 정부가 대형 시중은행장 인사에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 장서울은행장의 사퇴를 기정사실화 해놓고 최연종 한은 부총재를 부추기고 있다. 재경원은 「은행장추천위원회」가 현직 행장의 입김이 너무 세다는 이유로 지난해 「비상임이사를 통한 은행장추천제도」를 새로 도입했다. 그러나 재경원은 이번에 시중은행장 인사에 적극 개입함으로써 이 제도를 시행 첫해만에 고사시키고 말았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금융개혁이 성공하려면 제도개선과 함께 은행인사의 자율성이 확보돼야만 한다』고 지적하고 『아무리 제도가 좋아져도 인사에 대한 자율성이 없으면 은행의 정부예속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의 정책일관성 시비도 제기되고 있다. 은행장을 석달도 안돼 중도퇴진시켜 금융계를 뒤흔들어 놓을 바에는 무엇하러 올 봄 정기주총때 문제가 있는 행장후보에 대한 행장승인을 해주었냐는 것. 이같은 불만을 토대로 해당 금융기관들의 노조가 행장의 외부기용에 크게 반발, 관치금융 부활에 대항하는 물리적 마찰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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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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