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장기불황 서민 숨통조인다] 생활고에 적금해약ㆍ생계형 범죄까지

임대주택 입주민들이 보증금을 가압류당하고 오랫동안 부은 예금이나 보험을 깨고 있다는 것은 저소득층은 벼랑 끝까지 몰려 있고 중하위계층의 생활고도 한계에 봉착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이 같은 `생계형 금융부실`은 빚보증을 선 주변인들까지 힘들게 해 사회의 피로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소득증가에 비해 각종 금융비용은 물론 제세공과금 등 사회보장부담률은 더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 저소득층의 생계난이 갈수록 악화돼 범죄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임대료ㆍ이자 못내 임대보증금까지 잡혀=최근 국민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지난 3월 말 2.7%에서 9월 말에는 3%를 넘었다. 2~3년 전만 하더라도 저금리라고 판단했던 서민들이 집을 장만하기 위해 꿨던 은행돈을 경기침체 후 소득감소로 갚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이들이 어렵사리 마련한 연립주택이나 다세대주택이 경매로 넘어갈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임대주택 보증금 가압류가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은 하루살이에 급급한 저소득층이 보금자리를 잃을지도 모르는 위기에 놓여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서울도시개발공사의 한 관계자는 “임대주택 입주민 중 상당수가 일용직 근로자이거나 마땅한 수입이 없는 생활보호대상자들인데 최근의 경기침체로 이들의 일거리가 크게 줄어 소득이 감소하면서 보증금을 낼 때 얻었거나 최근 생활자금으로 쓴 빚을 갚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얼마 되지 않는 보증금까지 금융회사에 의해 가압류당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보증금을 가압류당한 입주민들은 계약기간 만료 전까지 대출금을 갚아 가압류를 풀지 못하면 임대주택에서 살지 못하고 길거리로 나앉게 된다. ◇소액소송도 급증=서민들의 생활고가 가중됨에 따라 법원에 소액사건ㆍ가처분사건 등이 쏟아지고 있다. 2,000만원 이하의 금전이나 유가증권 반환을 목적으로 청구하는 소액사건 건수는 8월 말 81만5,01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만여건이나 늘었으며 올해 100만건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신용불량자가 증가하면서 카드사 등 금융회사에서 대여금 청구소송을 무더기로 접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간 재산 관련 분쟁도 크게 늘어 가압류ㆍ가처분 등 보전처분 신청 건수 역시 164만여건에 달해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99년의 158만3,000여건보다 늘어난 수치다. ◇예금ㆍ보험 깨고 생계형 범죄까지=저소득층과 서민들의 생계유지가 어렵게 되면서 은행 예ㆍ적금은 물론 보험사 계약의 해약률도 늘어나고 생계형 범죄까지 증가하고 있다. 서민들이 대출금 상환에 급급하다 보니 적금이나 보험료 불입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들어 5월까지 조흥ㆍ우리ㆍ제일ㆍ외환ㆍ신한ㆍ한미ㆍ하나 등 7개 주요 시중은행의 월평균 적금해약 건수는 지난해에 비해 은행별로 1.5%에서 많게는 50% 이상 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불입한 보험료 중 상당 부분을 잃을 수 있는 보험해약이다. 2002회계연도(2001년 4월~2002년 3월)에 13.9%였던 생보업계의 실효해약률(보험료를 2개월 이상 연체하거나 해약한 건수 비율)은 2002년 14.8%로 1%포인트 가량 높아졌고 올 4월부터 7월까지는 6.4%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포인트 늘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소액절도를 하거나 아예 끼니를 때울 수 없어 무전취식을 하는 등의 생계형 범죄도 증가추세다. 2001년 8,652건이었던 생계형 범죄는 지난해 9,181건으로 늘었고 올들어 9월까지 8,033건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소득보다 보험료 등 각종 부담금은 더 늘어=문제는 소득증가율보다 세금이나 이자ㆍ보험료 등 각종 부담금의 증가율이 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 2ㆍ4분기 도시근로자 가구의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전년동기 대비 4.2% 증가(282만8,000원)하는 데 그쳤으나 가계지출은 7.2%(223만5,000원) 늘었다. 특히 지출 가운데 차입금 이자ㆍ세금ㆍ사회보험료 등 비소비지출이 14.2%나 급증했다. 세금과 보험료 등은 계속 올라가는데 금융회사에서 빌려 쓰는 빚마저 불어나다 보니 이자부담까지 가중, 살림살이가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부유층과 서민들의 소득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소득상위 20%에 속하는 가구(소득 5분위)의 평균소득은 하위 20%에 속하는 가구(소득 1분위) 소득의 5배에 달한다. 이 같은 소득격차는 불황이 길어질수록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 당국자는 “경기침체가 장기화될수록 중소기업과 서민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며 “서민들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는 실질적인 생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jun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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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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