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2차협상에서 적전분열로 비쳐질 부처간의 꼴불견스러운 갈등이 드러난 원인은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와 산업자원부가 개방폭을 둘러싸고 이견을 드러낸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적 배경은 통상교섭권한을 둘러싼 산자부와 외교부간 오랜 대립이 차기 정권에서 예상되는 정부 조직개편을 앞두고 조기에 표면화한 것이라는 분석이 관가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협상권한을 가진 통상교섭본부와 산업자원부 및 농림부 등 실무부처간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협상의 최일선에 있는 통상교섭본부는 산자부나 농림부가 관장하는 공산품과 농산품의 개방안이 보수적일수록 협상이 힘들다. 반면 산자부ㆍ농림부 입장에선 개방폭을 넓히면 국내 이해관계자의 민원이 쏟아지고 대책 마련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한ㆍEU FTA 협상단 내 불협화음도 이 같은 개방폭을 둘러싼 이견이 발단이 됐지만 내부 사정을 따져보면 더욱 복잡한 양상을 갖고 있다.
산자부는 10년 전 DJ정부가 출범하면서 통상교섭권한을 외교부에 넘겨준 후 실지 회복을 위해 칼을 갈아왔다. 정부 내에서도 단결력이 강하기로 소문난 산자부가 벼르는 것을 잘 아는 외교부도 해외공관과 통상교섭권을 활용, 줄기차게 산자부를 견제했다. 특히 한미 FTA 협상을 거치며 통상교섭본부는 소위 ‘뜬 데’ 비해 산자부는 제대로 평가를 못 받자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양측의 물밑 기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연말 대선이 끝나면 정부 조직개편이 핫이슈가 되고 통상권한을 어느 부처에 둘 것인지 하는 논란이 다시 불붙을 것” 이라며 “지키려는 외교부와 탈환하려는 산자부간 힘겨루기의 전초전이 벨기에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산자부는 10년 전 눈물을 삼키며 통상교섭권한을 내줄 때까지 한솥밥을 먹던 김한수 대표가 이런 친정의 상황을 잘 알면서도 등을 돌리자 브뤼셀 현지 상무관 등을 통해 반격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는 산자부 전신인 통상산업부에서 일하다 교섭권이 외교부 통상교섭본부로 넘어가면서 함께 자리를 옮겼다.
19일 김영주 산자부 장관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전화통화를 하며 양측간 갈등 진화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지만 양 부처간 감정의 골은 회복되기 어려운 수준으로 이미 벌어져 있다는 것이 관가의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