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대선(大選)을 1년 앞둔 18일,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오렌지 혁명’을 통해 극적으로 권좌에 오른 빅토르 유슈첸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마주하면서 4년 전 승리의 환호성을 부르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을까. 아니면 남은 임기에 대한 상념에 빠져보았을까.
해외순방을 마치고 일주일 전 돌아온 노 대통령. 국민들은 이 기간 동안 청와대가 오랜 준비(?)를 거쳐 꺼낸 ‘봉하마을’이라는 한 시골 이름에 눈길을 돌렸다. 노 대통령의 퇴임 후 거처에 대한 공식 발표 내용이었다. 6억원의 빚을 내서 12억원짜리 집을 새로 짓는다는 것이었다.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에서 꺼낸 공식 발표치고는 조금은 고약함이 느껴진다. 지지율이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는 대통령이라고 하지만 나랏님이 물러나 살 집을 짓고 있다는 소식을 벌써부터 들어야만 하다니….
떠남을 준비하는 대통령의 모습과 함께 국민들이 접했던 또 다른 뉴스는 청와대 참모들이 내뿜는 언론과 정적들에 대한 연이은 공세였다. ‘하이에나 행태로는 정론지 못 된다’는 한 비서관의 자극적 글귀에서 ‘파쇼적 분위기’ ‘극우의 광기’를 외치는 대통령 비서실장의 자극적 문체로 이어지는 릴레이 편지. 4년 전 기타를 치면서 서민의 아픔을 눈물로 노래하던 대통령과 순수함으로 시대를 바꾸겠다던 참모들의 외침은 어느덧 퇴임 후에 대한 때이른 준비와 도발의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다. 차기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두고 국민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청와대의 풍경화는 서글픔마저 느끼게 한다.
빠르게 퇴색해가고 있는 정권.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들에 대한 기대를 깨끗이 접고 남은 1년이 하루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속된 표현일지 모르지만 그건 분명 아닐 것이다.
청와대 출입 3개월, 기자는 집권자들이 품었던 초심만큼은 사라지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그들에 대한 티끌만큼의 애정이라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애정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대통령 자신이다. 정치색 가득한 글귀가 아닌, 고단한 서민에 대한 대통령의 소박한 연말 편지와 밝은 색깔의 각오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