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금융산업과 유목민

동쪽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서쪽 자위관(嘉峪關)까지 이르는 만리장성은 중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만리장성을 쌓게 된 배경을 중국 한족(漢族) 왕조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자랑스러울 것 같지는 않다. 고대로부터 중국 대륙에 정착하고 있던 한족은 수시로 자신들을 괴롭히던 북방 유목민족에 대한 고육책으로 만리장성이라는 거대한 토목공사를 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중국 민중의 고난 또한 대단했을 것이 자명하다. 북방의 유목민족은 목축을 위한 초지를 찾아 평생을 초원에서 이동하며 살아왔다. 우리나라 굴지 기업의 한 최고경영자(CEO)도 강연 중 인용했던, 돌궐의 명장 톤유쿠크 비문의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는 문구처럼 이들은 한곳에 정착하기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새로움을 추구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자연스럽게 속도를 중시하게 돼 기동성이 몸에 배었고 거친 자연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과 새로운 문물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사고와 수평적인 사회구조를 갖게 했다. 유목민족은 자신들의 장점을 바탕으로 중국은 물론 서유럽까지 진출하며 새로운 왕조의 창건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여는 등 세계사를 끊임없이 격동하게 만들었고 인류 문명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현대사회에서 유목민족의 사고와 삶의 방식은 다시 조명받고 있다.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이라는 말로 대변되듯이 시간과 공간의 한계에 고착되지 않는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창조적인 사고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단 디지털 분야에서뿐만 아니다. 금융권에서도 유목민적인 사고와 삶의 방식이 요구된다. 거대 외국 자본의 유입은 이미 오래전이고 우리 금융자본의 외국 진출도 활발하다. 국경과 같은 지역적 한계는 엷어지고 공간적 개념은 의미를 잃었다. 세계 금융권이라는 광활한 목초지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권이라는 한정된 시장 안에서 작은 이익을 위한 경쟁은 너무 근시안적인 사고이다. 광활한 초원을 달리며 세계 경영을 일궈낸 유목민과 같이, 좁은 테두리에서 벗어나 빠른 속도와 개방되고 진취적인 사고로 세계 금융시장을 종횡으로 누빌 수 있는 금융산업의 유목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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