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되돌아본 98경제] 고용불안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시련기로 비유되는 올해 국민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역시 일할 곳이 없는 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름하여 고용불안이다.40여일간 공장문을 닫은 현대자동차 사태로 대변되는 정리해고, 구조조정, 부도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다. 현대·삼성·대우·LG·SK 등 5대 대기업에서만 10월말 현재 6만여명이 직장을 떠났다. 용케 살아남은 사람들도 언제 자신에게 해고의 칼날이 겨누어질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임금은 깎이고 자녀학자금 등 대부분의 기업이 복지성급여항목을 삭제해 직장을 잃은 사람들에 비해 덜 하겠지만 여전히 생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진행중인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사업교환, 이른바 빅딜에 대해 두 회사의 근로자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고용불안이다. 관계부처의 장관까지 나서 『근로자 전원의 고용을 승계토록 하겠다』고 무마하고 나섰지만 근로자들은 믿지 못하겠다고 버틸만큼 고용불안의 그림자가 우리사회에 짙게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한 집 건너 실업가정=경기가 쉽게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도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인력조정을 강화하면서 실업사태는 쉽게 진정될 기미가 없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 11월 실업률은 7.3%, 실업자는 155만7,00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난 8월 이후 3개월연속 감소세를 보이던 실업률이 겨울을 맞아 일용직의 일감이 줄어들면서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정부에서 벌이고 있는 단발성 실업대책인 공공근로종사인원 33만여명(11월말 기준)이 사실상 실업상태인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실업자는 180만명을 웃돈다는 계산이다. 민간연구소들의 분석은 더욱 우울하다. 민간연구소들은 일용직 등 불완전 고용 상태에 있는, 다시말해 고정적인 직업이 없는 사람이 2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할 때 전국민의 두 가구중 한가구꼴로 실업의 고통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고실업과 임금감소로 일반가계가 겪는 생계의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 노동부가 조사한 올해 3·4분기중 근로자들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141만7,000원. 소비자물가 상승분을 감안한 실질임금은 120만4,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40만3,000원에 비해 14.2%가 줄었다. 소득은 줄고 빚은 늘어가고 있는 것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아닐 수 없다. 한국노총 조사에 의하면 근로자들은 1인당 평균 2,274만원의 빚을 안고 있으며 그 이자로 한달 평균 30만5,300원을 지불하고 있다. 이로인해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더한데서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뺀 고통지수가 지난해에 비해 무려 14배나 증가했다. ◇불완전 고용증가= 상용근로자들의 비중이 낮아지고 대신 고용이 불안정한 계약직과 임시직이 늘어나고 있다. 기업들이 나간 사람들의 빈 자리를 정식직원으로 메우지 않고 계약직과 임시직, 인턴사원으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근로자 10명중 정규직은 5명이고 나머지는 몇개월짜리 임시직이나 혹은 일당 얼마를 받고 일하는 일용직 근로자들이다. 더구나 올해 직장을 옮긴 상용직 근로자중 28.1%(15만6,000명)는 임시직 노동자로, 9.7%(5만4,000명)는 일용직 근로자로 전락했다. 이를 반영하듯 단시간 근로자와 파견 근로자, 계약직 근로자들은 늘어나고 있다. 은행권의 경우 정규직원들이 무더기로 퇴사한 탓에 영업점과 창구요원에 파트타이머로 채우고 있다. 상업은행의 경우 지난 95년 파트타이머가 205명이었으나 올 4월에는 581명으로, 한일은행은 115명에서 398명으로 늘었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대기업의 분사도 고용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10월말 현재 5대 그룹의 31개 기업에서 123개의 분사(8,200명)를 실시했다. 분사기업의 평균 종업원수는 67명, 10~49명인 사업장이 전체의 37.4%에 달한다. 자본금 1억원 미만도 절반에 달한다. 당초 분사해 나올 때 대기업에서는 모든 면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해준다고 했지만 지원이 계속될 지는 아무도 장담못한다. 이미 일부에서는 분사업체에 납품가격을 깎거나 사무실을 별도로 임대하도록 하고 임금도 내리라는 요구하는 대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내년은 어떻게 되나= 고실업추세가 앞으로도 수년동안 지속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내년 1·4분기중 실업률이 8.8%까지 치솟아 실업자가 186만1,000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업의 내용도 악화되고 있다. 총실업자중 1년이상 연속적으로 실업한 장기실업자의 비율이 올 상반기에는 0.8%에 불과했으나 하반기에는 1.7%, 내년에는 8% 수준에 달할 전망이다. 고용조정을 단행한 기업들이 생산량이 소폭 늘어난다고 해서 근로자 채용을 늘릴 가능성이 적은 만큼 7~8%대의 고실업추세는 향후 3~4년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연구원측의 분석이다. 제조업에서 더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정부는 문화, 영상, 보건의료, 소프트웨어산업에서 내년부터 매년 30만~4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구체적인 계획이나 검증되지 못한 것으로 실현가능성은 불투명하다.【이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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