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1월8일] 드레이크


‘땅에서 석유를 캐낸다고? 제 정신이 아니군.’ 뉴욕의 은행장 타운센드의 석유 굴착사업에 대한 반응이다. 그럴 만도 했다. 석유(石油ㆍrock oil)라는 이름도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석탄의 기름방울이라는 뜻에서 생겼으니까. 투자자를 모집한 타운젠드와 변호사 조지 비셀의 생각은 달랐다. 지하 소금광맥을 찾아내는 중국의 염정(鹽井) 굴착기술을 동원하면 기름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때가 1856년. 비셀은 우연히 만난 드레이크(Edwin Drake)에게 채굴작업을 맡겼다. 전직 철도원인 드레이크의 무료 열차탑승권이 시추지를 찾아다녀야 하는 탐사팀에는 매력이었다. 40세 초반의 드레이크는 월 85달러를 받으며 펜실베이니아 티누스빌에서 2년간 땅을 뚫었으나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투자자금 2,000달러(요즘 가치 4만8,640달러)가 바닥날 즈음인 1859년 8월 지하 21m에서 유징이 보였다. 수동식 펌프로 끌어올렸더니 석유였다. 생산량은 하루 30배럴(4,767리터). 당시에는 대단한 규모였다. 티누스빌에는 1년 사이 300개의 유정이 뚫리고 미국 전역에서 개발 붐이 일었다. 근대 석유산업의 출발점이다. 단 세 곳에 구멍을 뚫어 거부가 된 드레이크는 주식투자로 재산을 날리고 펜실베이니아주가 석유발견 공로를 인정해 지급하는 종신연금으로 연명하다 1880년 11월8일 61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지만 석유산업의 아버지로 기억된다. 석유 본격 개발 147년, 찬란한 석유문명 속에서 인류는 자원고갈에 직면해 있다. 개발 초기 모든 원유는 램프용 등유로만 팔렸다. ‘불필요한 부산물’인 휘발유는 버리거나 운이 좋아야 1배럴당 80센트에 넘겼다. 값이 다소 떨어졌다는 요즘 주요소에서 그만큼 사려면 23만원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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