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에서 원천기술의 중요성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겠지만 최근에는 해외플랜트 수주나 원전수출 등에서도 부족한 원천기술로 애를 태우고 있다. 우리나라 원전수출의 첫 시험대가 될 아랍에미리트(UAE)는 8월 중으로 총 4기의 원전을 건설할 업체후보를 3개에서 2개로 압축한다.
기업·대학 겨냥 '특허괴물'횡행
그런데 국무총리까지 로비에 나서고 사업 규모가 200억달러에 달하는 대형 사업의 최종입찰을 앞두고 웨스팅하우스가 핵심설비 공사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요청해왔다.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5월 이미 사전자격심사에 탈락했지만 냉각제 펌프 등 3대 핵심기술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제휴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미국 원천기술을 이용해 수출하려면 미국 정부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과거 중국에 원전수출을 시도할 때 이미 같은 문제로 실패한 뼈저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핵심기술은 주기기설비 공사비의 48%나 차지한다. 원전 시공 기간이 50개월로 프랑스(54개월)나 일본(65개월)보다 빠르고 건설비용도 1㎾당 1,300달러로 프랑스나 미국의 3분의1 수준에 지나지 않는 강점을 살리지 못하고 고부가가치 사업의 일부를 다른 나라에 넘겨야 하는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플랜트 수출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최근 국내 건설ㆍ엔지니어링 업체들은 중동 등지에서 연이어 대규모 가스플랜트 공사를 수주했다. 그러나 전체 공사비의 50~60%에 달하는 설비기자재에서 국내산은 30% 정도에 불과해 높은 수익을 깎아내리고 있다. 원천기술이 없는 탓에 기본설계에 참여하지 못하고 국산기자재가 국제 기준에도 맞지 않아 외국산 기기를 조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익을 높이기 위해 원천기술의 확보가 다급한 이유다.
우리 기업이 미국이나 일본 기업에 비해 첨단기술 확보에서 엄청나게 뒤지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최근 국내 기업은 물론 대학까지 겨냥한 ‘특허 괴물(Patent Troll)’이 횡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품을 제조하지 않고 특허만 보유한 채 사용료를 주 수익으로 삼는 특허괴물들은 전세계에 100개가 넘는다. 이들은 특허를 침해했다며 국내 대기업에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연간 특허사용료를 요구하는가 하면 아예 대학연구소 단계에서 교수들을 상대로 수백개의 특허 아이디어 협약을 맺은 뒤 상품성이 있는 경우 정식특허로 출원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당장 대학에서는 연구개발비를 지원 받을 수 있고 해외특허출원 비용을 절약하는 이점이 있지만 국가적으로는 우리 손으로 획득한 첨단기술로 외국업체를 도와주는 꼴이어서 안타깝다. 대학의 기술력은 높지만 특허로 제때 연결되지 않는 우리나라와 인도가 주 타깃이라니 답답한 노릇이다. 국내 대학의 특허가치를 저평가하는 우리 기업의 관행이 사라지고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없으면 해소되기 어려운 문제다.
정부, 지재권보호 체계적 지원을
다행히 최근 정부는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특허펀드’를 조성하고 범정부 차원의 국가지식재산개발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본이 정부 예산에 기업과 금융회사 출자금까지 합쳐 총 1조엔 규모의 ‘산업혁신기구’를 발족하기로 결정한 데 비하면 올해 200억원을 조성하고 오는 2011년 민관 공동의 ‘지식재산관리회사’를 설립하기로 한 것은 너무 빈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울러 기술입국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과학기술부를 교육부와 합친 것은 지나친 단견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 증가율이 지난해 8.8%에서 올해는 2%대에 머물 것이라고 한다. 경제침체기일수록 미래에 대비해 기초과학의 진흥과 원천기술의 개발에 더욱 힘쓰는 안목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