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빗나간 대선자금 수사

“부패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증거가 있으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철저히 수사할 방침입니다. 그러나 경제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업 비자금 부분은 수사대상에서 제외하고 기업 압수수색 과정도 언론에 공개하지 않을 방침입니다.” 지난달 3일 대검은 불법 대선자금 전면수사를 발표하면서 이 같은 수사원칙을 밝혔다. 불법 대선자금의 악순환은 끊되 기업활동은 위축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전면수사 한 달여가 지난 시점에서 돌아보면 상황은 검찰의 의도와는 상당히 다른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 등 기업인들이 무더기로 출국금지 됐는가 하면 기업의 은밀한 자금인 `비자금` 부분도 기업들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구 파헤쳐지고 있다. 또 LG홈쇼핑과 삼성전기, 현대캐피탈, 롯데 등 이른바 `5대 기업`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이 언론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기업들의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다. 이처럼 기업에 대한 검찰의 압박이 강화되면서 기업활동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기업총수와 임원들의 출국금지로 상당수 기업들이 대외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고 새해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도 기업들이 내년도 사업을 확정짓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검찰은 이런 현상의 원인이 기업체들의 수사 비협조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불법 대선자금을 먼저 요구한 정치권에 대한 수사를 보면 검찰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치인들이 방탄국회를 무기로 `버티기`에 들어가자 이들에 대한 소환조사는 계속 미뤄지고 있고 정당에 대한 계좌추적도 극히 제한적으로만 실시되고 있다. `국민의 대표기관`이라는 점을 의식해 정당에 대한 압수수색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연히 정당에 대한 수사 속도는 기업체에 비해 느릴 수 밖에 없다. 검찰이 8일 이회창 후보의 사조직에서 수백억원의 대선자금을 거둔 단서를 포착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이 마저도 그 동안 5대 기업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통해 확보한 단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치자금으로 인한 부패의 악순환을 끊는 것은 정당이나 기업체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자칫 `기업 죽이기`가 될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를 벼랑끝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이제 정치권의 눈치를 보다가 경제의 주름살만 늘리는 수사방식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때다. <오철수(사회부 차장) cso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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