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요동치는 稅政 겉과속] <2> 선진국병에 걸린 한국 세제

"선진구호만 난무" 경쟁력 제자리<br>법인세 등 놔둔채 재산세만 급격 현실화<br>비과세·감면 등 늘어 세금체계 복잡해져

[요동치는 稅政 겉과속] 선진국병에 걸린 한국 세제 "선진구호만 난무" 경쟁력 제자리법인세 등 놔둔채 재산세만 급격 현실화비과세·감면 등 늘어 세금체계 복잡해져 • 세금 납부 "번거로워요" 지난 2003년 ‘10ㆍ29 대책’ 발표 직후. 정세균 당시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은 기자들과 만나 “재산세를 중과하는 것을 하루아침에 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보유세 현실화는 20년의 긴 세월을 두고 조금씩 해야 한다”고 말했다. 10여개월 후. 정부는 지난해 9월16일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보유세를 5년 안에 두 배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이달 4일에는 오는 2017년까지 8배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살인적인 세금인상. 정부는 10ㆍ29 때나 5ㆍ4 조치 때나 ‘선진국형 재산세제 개편’이라는 논리를 대의명분으로 내세웠다. 미국의 경우 재산세가 부동산 가액의 1~1.5%(실효세율)로 우리나라(2005년 현재 0.15%)는 그에 비하면 턱 없이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유세율을 높이는 것이 선진국형 세제 시스템의 정답일까. 전문가들은 정부가 ‘글로벌 스탠더드의 함정’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 우려한다. 손재영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내세우는 선진국형 재산세제는 어느 곳에도 없는 개념”이라고 일축했다. 외국의 세목(稅目)에 대한 단편 정보를 갖고 대중에게 과장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세 전문가도 “조세에서 선진국형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개념조차 모호하다. 어느 것이 선진국형 조세인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며 “한국의 조세정책은 마치 선진국병에 걸린 것 같다”고 비판했다. 재산세만 놓고 보자. 현 세제개편 방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일치된 점을 찾기 힘들다. 선진국의 국내총생산(GDP)ㆍ총조세ㆍ총지방세 대비 재산세 비율은 2~50%까지 천차만별이다. 이탈리아ㆍ그리스 등은 아예 지방세로 과세하며 중앙정부가 거둬들이는 보유과세는 없다. 독일과 스페인 등도 총조세 수입 중 재산세 비중이 2% 미만으로 우리나라(2002년 기준 12%)보다 낮다. 미국도 주정부마다 재산세가 각양각색이다. 손 교수는 “미국 재산세는 일부 주정부에서 1%의 높은 실효세율을 적용하지만 철저하게 학교시설 확충 등 지방 공공 서비스 부문에 사용한다”며 “이런 점은 보지 않고 높은 세율 자체만 보고 개편방향을 찾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일련의 선진국형 세제개편도 마찬가지다. 무늬만 선진국형 조세체제일 뿐, 우리의 정책현황과 여론수렴 과정을 보면 전혀 선진국답지 못하다. 선진국들이 진행하는 조세정책의 큰 그림은 ▦세제의 간소화 ▦소득세제 개혁 ▦조세감면의 축소와 개편 등으로 압축된다. 세제 간소화만 놓고 보자. 한국조세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97년 세목은 국세 17개, 지방세 15개 등 32개였다. 국세 14개, 지방세 17개 등 31개인 지금과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의 세목은 선진국은 고사하고 후진국에 비해도 지나치게 많다는 게 연구원측의 분석이다. 오히려 세금체계만 더 복잡해졌다. 비과세ㆍ감면이 늘어나 세무 전문가들조차 세법을 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단계에 왔다.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들(전문가)만의 세법’ 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세금개편 과정에서 의견수렴 과정도 매우 후진적이다. 미국은 상속세 폐지를 놓고 몇 년째 토론을 벌이고 있다. 호주는 납세비용을 줄이기 위한 세법개정을 3년에 걸쳐 진행했다. 중국도 조세정책을 바꿀 때는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한 뒤 그 결과를 보고 방향을 설정한다. 한 조세 전문가는 “이렇게 급진적으로 세금을 올린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사례”라며 “선진형 조세정책은 형평성 못지않게 국민 동의를 기반으로 하는데 현 정책은 겉만 선진국을 추구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조세정책은 부동산 가격을 잡는 데 혈안이 돼 있는 것 같다”며 “세금 강화를 통한 부동산 가격안정 효과는 단기에 그칠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기업들의 경쟁력을 뒷받침해줘야 할 법인세, 경기를 진작시켜야 할 부가가치세 등도 세수(稅收)에 급급한 채 국제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조차 “소득ㆍ법인세를 자꾸 낮추는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지 않으면 기업들은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무조건 내려주려니 세수가 문제고…”라며 딜레마에 빠진 현실을 전했다. 국책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선진국형 조세 개혁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 원점에서 깊이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뒤 “세금을 올려서 어디어디에다 쓰겠다는 정부의 얘기를 들어본 사람이 있느냐고”고 반문했다. 세금에 대한 투명한 공개와 국민적 동의가 없다면 세금개혁은 부작용만 양산한다는 얘기이다. /특별취재팀 안의식기자 김영기기자 이종배기자 현상경기자 miracle@sed.co.kr 입력시간 : 2005-05-09 18:57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