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베네스트 골프장 총지배인으로 있던 시절 어느 날이었다.
한 캐디가 아기를 업고 그린에 올라가더니 코를 그린에 대고 냄새를 맡으며 마냥 흐뭇해 하는 모습이 그윽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는 나를 보고는 달려와서 덥석 안기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취하기도 하고 그보다도 오랜만의 만남에 반가웠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안아주었다.
그날은 바로 `홈커밍 데이`였다. 매년 4월20일경이면 안양골프장의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로 옛 가족들을 위한 초청행사가 열렸다. 이날에는 시집간 캐디가 평소에 그리던 친정집에 온 듯 그린 위에서 향수를 달래는 장면이 여기저기에서 보이곤 했다.
당시 회사 사무실 벽 액자에 `나의 회사는`이라는 제목의 글을 적어 넣어 붙여 두었던 기억이 난다. 세 줄의 짧은 글이었지만 당시 우리 모두에게 마음의 구심점이 돼 주었던 것이었다. 그 글귀는 `처음에는 내가 필요로 한 회사였으며, 지금은 회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어야 겠으며, 떠난 후에는 다시 나에게 필요한 회사가 되어야겠다`라는 것으로 우리들의 삶의 헌법이자 생활의 신조로 삼고자 했었다.
그러한 우리의 헌법에 따라 OB와 YB의 만남이 지속됐고 그날 그린을 밟은 그 캐디도 많은 초청자처럼 예전에는 아마도 떳떳하고 당당한 직업인으로 일을 했으리라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지금은 골프장 경영 일선에서 일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는 캐디를 한 가족으로 여겼던 그 당시의 마음가짐만은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간혹 캐디를 하대하고 윽박지르는 골퍼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들을 라운드 동반자로 여길 때 그들은 더욱 당당한 직업인으로서 긍지를 가질 것이며 결국 고객을 대하는 태도도 나아질 것으로 믿는다.
벚꽃 피던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마냥 흐뭇하기만 하다. 문득문득 그들이 그리워진다.
<김현수,조의준기자 joyjun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