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9월25일] 태평양


[오늘의 경제소사/9월25일] 태평양 권홍우 편집위원 1513년 9월25일, 발보아(Balboa)의 탐험대 1,000여명이 산을 타기 시작했다. 발보아가 정상에 오르자 한없이 크고 푸른 빛의 바다가 들어왔다. 발보아는 이 바다를 ‘남해’라고 불렀다. 7년 뒤 이 바다는 항해가 마젤란으로부터 ‘태평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유럽인으로서는 처음 태평양을 본 주인공인 발보아의 탐험을 자극한 것은 돈. 신대륙을 뒤지면 반드시 금광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탐험으로 이어졌다. 스페인 왕이 신대륙의 개척자들에게 ‘금을 가져와라, 가능한 인도적인 방법으로. 그러나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금을 가져와라’고 재촉하던 시절이다. 발보아가 목도한 ‘새로운 바다’에 관한 소식은 신항로 개척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마젤란과 드레이크의 세계일주 항해가 뒤따르고 지식인 사회는 충격을 받았다. 교회의 가르침과 달리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학회를 만들고 사색과 회의, 실증적 실험에 빠졌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이 대항해시대와 자본축적, 과학기술 발전을 재촉한 셈이다. 발보아는 비극의 씨앗도 뿌렸다. 권력다툼에 밀려 탈세와 반란 혐의로 참수형을 당했으며 찬란했던 잉카문명도 발보아를 체포했던 군인 출신 탐험가 피사로에 의해 파괴됐다. 스페인도 마찬가지다. 신대륙에서 들어오는 금은보화를 바탕 삼아 ‘유럽대륙의 경찰’ 노릇에 들어가는 막대한 재정지출을 견디다 못해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다섯 차례나 채무불이행(국가부도) 상태를 맞았다. 발보아가 원주민을 이끌고 지나갔던 길에는 오늘날 파나마운하가 자리잡고 있다. 그가 바라봤던 태평양은 가장 분주한 항로로 꼽힌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원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이른다. 입력시간 : 2006/09/2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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