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이방인의 도시, 사랑 대신 공허함이…

영화 ‘러브 토크’


‘천사의 도시’라는 로스앤젤레스. 그 곳에서 이방인 세 사람이 부유한다. ‘서울시 나성구’라는 이 곳, 익숙할 법도 하지만 여전히 낯선 이국의 도시다. 이별을 찾아, 자유를 찾아 떠나지만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사랑에 상처받고 사랑을 기다리지만, 남겨진 건 아픔도 아닌 외로움. 한없이 무기력해 보이는 군상들 속에서 마음을 연다는 건 도시에 익숙해지는 것 만큼이나 버거운 일이다. 영화 ‘러브 토크’의 색깔은 회색빛 섞인 하늘색이다. 국경을 넘은 건 그저 낯선 이미지가 필요했을 뿐.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설레임과 애틋함은 찾을 수가 없다. 그 빈자리를 메우는 건 결국 공허함이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무기력하지만 삶의 패배자로서가 아닌,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다. LA 다운타운에서 마사지숍을 하며 살아가는 써니(배종옥). 손님에게 ‘특별한 서비스’도 해 주는, 삶의 무게가 목에 주름으로 나이테를 두른 여자다. 그녀의 집 2층에 지석(박희순)이 세를 든다. 사랑에 상처받고 그 여자가 산다는 LA에 무작정 찾아온 남자다. 어느 날, 써니는 교민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러브 토크’를 듣다가 진행자에게 불쑥 전화를 걸어 상담을 한다. 진행자는 헬렌 정이라는 이름을 쓰는 영신(박진희). 매일 청취자들의 애정 상담을 받지만 정작 자신은 사랑에 무기력하다. 영신은 지석의 옛 애인. 세 주인공은 묘한 공간 속에서 서로를 느끼지만 단지 그것 뿐. 오로지 공허함과 소심함만이 그들을 공기처럼 감싼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 채 주저앉는다. 영화 내내 흐르는 나른한 재즈음악은 공허함을 권태와 허무로까지 끌고 나간다. 세 주인공 그 누구도 ‘사랑’이란 단어를 쓰지 않지만, 모두들 사랑에 상처받고 사랑에 힘들어한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관객은 나른해진다. 정신없이 에피소드가 연결되는 드라마와 영화에 중독된 탓일까. 관객에겐 인내심까지 요구된다. 영화의 모습이 사실은 우리의 삶과 너무도 닮았지만 말이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여자, 정혜’를 선보이며 독특한 감성을 전했던 이윤기 감독의 두번째 작품. 말없이 삶의 무게에 눌린 일상을 사는 평범한 이들에게 카메라를 맞추는 이 감독의 초점은 이번 영화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영화는 감독이 말하는 대로 소음에 집착한다. 극장의 공기를 채우는 교민 라디오방송 소리는 자칫 작위적일 법한 영화에 리얼리티를 불어 넣는다. 다른 문법의 영화, 낯설지만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11일 개봉.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