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이 법정 통과 시한인 12월2일을 또다시 넘겼다. 하긴 지난 17년 동안 대선이 있었던 2002년을 제외하고는 법정기한 내에 통과된 적이 한번도 없었으니 놀랄 일도 아니다. 경제 살리기와 아무런 연도 없고 오히려 국론 분열만 부추기는 사학법 통과에 정부 여당이 목숨을 걸고 있으니 예산안 통과가 뭐 그리 대수일 것인가.
기획예산처 장관이 예산안이 제때 통과되지 않을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치는 폐해에 대해 정치권에 그렇게 읍소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를 포함한 정부와 달리 현 정권은 경제보다는 전교조를 포함한 진보세력의 비위 맞추기와 과거사법ㆍ신문법ㆍ수도분할법 등과 같은 우리 사회의 틀 바꾸기를 더 시급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3년연속 적자로 부채 큰폭 증가
무리한 사학법 통과로 인해 야당은 거리 투쟁으로 나섰고 연말까지 시간은 별로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년도 우리 경제의 흐름을 좌우할 예산안에 대한 심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렇게 되면 9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국가부채를 전제로 팽창적으로 짜여진 예산안이 그대로 통과될 것은 물론이고 예산결산소위ㆍ계수조정소위를 거치면서 해당 위원들의 지역구 예산까지 추가돼 그야말로 누더기 예산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야당은 뒷북치기 사학법 무효 투쟁을 하더라도 우리 경제의 중차대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심의를 해야 할 것이다. 우선 내년도 예산 규모는 분명히 팽창예산이기에 삭감할 필요가 있다.
경제를 우선시 하는 정부라면 경제 상황에 따라 적자예산과 팽창예산을 얼마든지 용인해줄 수 있지만 경제를 뒷전으로 하면서 망가진 경제를 편법으로 부양하기 위해 막대한 적자국채를 발행하면서 방만하게 예산을 운용하는 것을 우리 국민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3년 연속 적자예산을 편성하고 국가부채를 2배 가까이 증가시켰다. 공적자금 손실분 국채 전환 37조원을 감안해도 너무나 빠른 국가부채 증가율이다.
내년도 예산안은 경상경제성장률 7.5%를 예상하고 통합재정의 경우 올해보다 6.5% 증가, 일반회계의 경우 8.4% 증가하도록 짜여 있다. 세수로 충당되는 일반회계를 기준으로 이것은 분명히 팽창예산이기에 삭감할 필요가 있다. 참여정부 출범 초만 해도 기획예산처는 국가부채 축소와 균형재정 회복을 중시하고 예산의 방만한 증가를 억제하려는 의지가 있었는데 최근에 와서 이 의지가 상당히 퇴색된 것 같아 걱정이다.
예산의 규모뿐 아니라 내용도 문제다. 정부는 오는 2006년도 예산안의 특징을 미래성장동력 확충과 양극화 완화의 두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복지와 분배에 더 치중한 예산임을 부정할 수 없다. 통합예산을 기준으로 사회복지예산이 54조6,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0.8% 증가하면서 전체의 4분의1을 차지하고 있고 기초생활보장예산도 무려 22% 증가하고 있다.
균형재정 위해 '선택과 집중' 을
반면에 성장과 관련된 교육, 사회간접자본(SOC), 산업ㆍ중소기업, 연구개발 분야의 예산은 전반적으로 낮다. 물론 정부도 성장동력 확충과 양극화 완화에 동시에 기여할 수 있는 복지사업을 찾는 등 노력은 했지만 국민의 정부 이후 8년 동안 사회복지예산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빠듯한 재정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여러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 하는 것보다 경제활성화, 성장잠재력 확충, 서민생활 안정에 예산 증액을 집중하고 나머지 항목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동결한다는 원칙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불요불급한 정부 확대와 대형 국책사업을 축소하고 지방대학 혁신 역량 강화와 국가 균형발전과 같이 낭비될 소지가 많은 예산들에 대해 철저하게 심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