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4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통화정책회의 뒤 기자회견을 열고 "유로존의 경제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통화완화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며 "은행은 모든 금리가 현 수준을 유지하거나 더 낮은 수준에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드라기 총재는 이어 "기준금리를 비롯해 초단기 예금금리, 최저대출 금리 등 3개 금리 모두를 인하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해 이미 0% 수준인 단기예금 금리를 마이너스 상태로 끌어내리는 방안도 숙고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현지 전문가들은 남부 위기국 은행 등이 기존 예금을 기업 대출에 활용하기 보다 ECB에 묻어두는 경향이 높은 점을 감안, 예금 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려 권역 내 기업대출 활성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드라기 총재는 완화책이 지속될'상당 기간'의 정도를 묻는 질문에도 "유로존 금리는 인플레이션과 경제 상황, 통화 유동성 등 3가지 측면을 기초로 결정된다"며 "당분간은 출구전략보다는 저금리를 유지하거나 이보다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날 그는 기준금리에 대한 향후 지침(forward guidence)과 관련, ECB가 전례 없는 행보에 돌입할 방침임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회의 석상에서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집중 토론이 벌어지며 금리 동결과 인하로 위원들의 시각이 갈렸다" 면서 "지금까지 관례에서 벗어나 향후 기준금리 지침을 제시하려는 이유"라고 답했다. ECB가 금리 전망에 대한 '화려한 수사학'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방향성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드라기 총재는 "지난해 여름 이후 금융시장이 현저히 개선돼 실물경제 회복에도 역할을 할 수 있고 인플레이션도 잘 통제되는 편"이라면서도 아직 미미한 실물 경제의 회복 기조를 감안해 이 같은 정책이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제의 개선 시점을 올해 말이나 내년께로 예상했다.
최근 위기 재현 가능성이 불거지고 있는 포르투갈 문제와 관련해 그는 "포르투갈은 구조개혁 과제를 충실히 잘 이행해 온 믿을 만한 국가"라며 정부 정책의 보조수단 정도로 무제한 국채매입 프로그램(OMT)을 도입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그는 "OMT는 유로존에 실질적인 위기가 드리웠음을 뜻하는 것"이라며 "특히나 이는 회원국의 요청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밝혔다.
ECB는 지난해 7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이후 9개월간 동결 기조를 유지해오다가 지난 5월 0.25% 포인트 인하했으며, 이후 3개월 연속 금리를 동결했다. ECB는 이날 현행 0.5%인 하루짜리 최저 대출금리와 0%인 초단기 예금금리도 각각 동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