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행장 출근길 연 외환노조

은행장이 일주일 이상 바깥을 전전하다가 집무실에 출근해 정상 근무를 했다는 게 뉴스가 된다면 우스운 일이다. 바로 그런 일이 외환은행에서 벌어졌다. 리처드 웨커 외환은행장이 22일, 일주일 만에 집무실로 정상 출근했다. 매각을 반대하며 출입구를 봉쇄하던 노조가 농성을 풀었기 때문이다. 노사가 다시 대화의 테이블에 마주앉게 됐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외국인 행장이 출근을 저지당한 채 노상에서 노조원과 대치하는 모습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면 지난 일주일간 외환 노조가 행장 출근 저지 투쟁을 하면서 남긴 것은 무엇인가. 외환은행의 불법 매각을 저지하겠다는 주장을 동의하기도 어렵거니와 그 행동 방식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일단 노조는 싸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웨커 행장은 론스타에 의해 영입된 전문 경영인이다. 은행 매각 이후 자신의 거취도 불분명한 처지다. 더구나 경영진의 출근을 막는 것은 현행법상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 정당성 여부를 떠나 명분 없는 투쟁이었다. 노조는 실리면에서도 많은 것을 잃었다. 우선 명분을 잃으면서 여론의 역풍에 직면했다. 신뢰를 잃은 고객들이 하나 둘씩 은행을 떠나가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고객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노조의 싸움은 외부에서 볼 때 제 밥그릇 챙기기로만 보일 뿐이다. 더구나 노조가 행장과 노상 대치를 벌이던 순간 국민은행은 이사회를 열어 외환은행 인수를 최종 승인했다. 노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매각은 일정대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외환 노조 내부에서도 현 집행부를 질타하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싸움에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싸움을 성공적으로 이끌 전략과 전술도 필요하다. 외환 노조는 행장 출근 저지 투쟁에서 명분도 잃고 전략과 전술에서도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직 외환은행 매각이 마무리되기까지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 금융감독위원회의 대주주적격성심사 등 여러 단계가 남아 있다. 외환 노조는 출근 저지 투쟁과 같은 무모한 투쟁을 거울 삼아 실리 위주로 투쟁 방향을 바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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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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