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8월 18일] 불확실성 부채질하는 정책

사무엘 베케트 원작의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연극을 기억하는가. 연극에서는 초반부터 끝날 때까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과 그들의 일상이 그려진다. 느닷없이 연극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지금 정부 대책을 기다리는 시장이 마치 '고도'를 기다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과잉공급에 집값 저점도 몰라


각종 언론에서는 8월 말에 대책이 발표될 예정이라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정부 관계자들에게 대책발표 시기를 물어보면 난감해한다. 대책발표가 한번 불발로 끝났음에도 시장에서 부동산 거래를 하려던 주체들은 잠시 소강상태다. 무엇이 되었든 대책의 내용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나마 성사될 뻔했던 거래도 모두 대기상태이다. 과연 주택거래활성화 대책은 나올 것인가. 대책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길 것인가.

정책의 내용은 정부의 시장판단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시장상황에 대한 정부의 판단은 어떨까. 경제부처 입장에서 볼 때 물가상승 압력이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 안정은 매우 다행스럽다. 친서민정책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거래활성화 대책에는 수식어가 하나 붙는다. '가격은 상승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만 활성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격이 계속 떨어질 것이라는 상황에서 주택거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누가 사겠는가. 거래가 성사되려면 가격이 당장 오르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더 이상 떨어지지 않는다는 '저점(바닥) 확인'이 돼야 한다. 현재 수요자들이 가격하락을 예견하는 것은 수요위축도 있겠지만 공급이 더 큰 문제다. 미분양ㆍ미입주 등 당장 체감되는 공급물량이 너무 많다. 수요자들은 조금 더 기다리다 주택을 구매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기다리면 가격은 좀 더 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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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이 아니다. 현재 과잉공급이 문제되고 있는 수도권은 미분양ㆍ미입주 외에 아직도 공급돼야 할 주택 대기물량이 많다. 지난 2006년 이후 대대적으로 시행했던 수도권 제2기 신도시 개발로 향후 10년 동안 주택을 건설할 택지의 80%가 이미 확보됐다. 앞으로도 주택공급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신도시 내 택지에서 분양해야 할 주택이 아직 절반이나 남아 있다. 여기에 보금자리주택 공급도 시기를 앞당겨 오는 2012년까지 당초 40만가구에서 60만가구로 늘려 공급하겠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LH공사의 주택사업 재검토, 공모형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들의 좌초, 지방자치단체장 교체에 따른 기존 개발사업 중단 등 수도권 주택시장에는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주저말고 뚜렷한 정책 내놓길

문제는 지금으로서는 개선의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고민도 점점 깊어가고 있다. 더 이상 시장을 그대로 놓아둘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적절한 정책수단을 찾기는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안정을 위해 전세계가 주택담보대출 기준을 강화하고 있는데 우리만 총부채상환비율(DTI)를 완화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지난번 대책발표 불발은 DTI 규제가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DTI 완화가 문제가 아니다. 이미 DTI 완화만으로는 시장을 반전시키기 어려워진 것이다.

주택공급 조절도 쉽지 않다. 친서민정책을 표방한 정부로서는 친서민 대상 주택인 보금자리 정책을 수정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금융규제 완화도 안 되고 공급물량 조절도 안 된다면 딱히 기대할 대책이 없다. 그렇다고 계속 주저하기만 한다면 정부의 주택거래 활성화 대책은 정녕 정체불명의 '고도'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대책의 내용을 상상하며 기다리기만 하는 시장은 더욱 불확실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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