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비틀거리는 한국의 신용

참으로 허탈하다. 무슨 말을 하긴 해야 될 텐데 쉽지 않다. 며칠새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끊임없이 물어본다. 그런데 한국기업의 최고경영자(CEO)라는 사람이 어떤 해명이나 항변도 할 수가 없다. 말을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은 이곳 뉴욕에 도착하면서이다. 짐을 풀기도 전에 만난 각 나라의 CEO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한국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등의 질문공세를 폈다. 필자는 지난 12일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기 전에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외국인들의 입에서 탄핵안 가결 소식을 전해들었다. 외국인들의 질문 속에 묘한 동정심이 숨어 있었다. 한국과 관련 있는 기업들이어서 국내 상황을 우려할 법했지만 그보다는 `이해할 수 없다` `측은하다`는 어조가 섞여 있었다. 한참 뒤에 대강의 상황을 알아본 뒤 대충 대답은 했지만 “정치적인 사안일 뿐이며, 경제 등의 다른 활동에는 별일 없을 것”이라는 말이 전부였다.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충족시켜주지 못할 것은 뻔했다. 처음에는 한국이 거덜이라도 난 듯 호들갑을 떨며 묻던 그들도 며칠 후 금융시장이 정상화되고 한국경제가 어느 정도 영향은 받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 등이 전해지자 흥분이 다소 가라앉는 분위기다. 국제적 신용평가기관들도 “국가신용등급에는 영향을 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덕분에 탄핵과 관련된 질문들도 수그러들겠거니 했다. 그런데 웬걸, 이제는 더욱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을 내놓는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안 가결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 하고, 많은 국민들이 반대한다고 하는데 왜 국회는 온몸을 던져 탄핵을 결정했느냐.” 국회 본회의장에서의 부끄러운 물리적 충돌 장면을 고스란히 TV로 지켜본 그들로서는 12일 국회 격투기 장면이 선뜻 이해가 안되는 모양이다. 솔직히 필자도 이해가 잘 안되고, 그 이유를 모르겠다. 왜 남의 나라에 장사하러 와서 정치문제로 고개를 들지 못하는지 때로는 화가 난다. 호텔이나 식당, 사무실에서 일하는 한국계 직원들도 필자와 다를 바 없다고 한다. 왜 우리 한국인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이런 일로 부끄러워해야 할까. 이국땅의 한국인들이 모국 때문에 느끼는 부끄러움은 같은 핏줄끼리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신용이 흔들리고 있다. 힘들여 쌓은 신용이 무너지는 것은 눈 깜짝할 새다. 자꾸 한국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어진다. 사업차 외국을 참으로 많이 돌아다녔건만 이렇게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조바심이 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이제 우리 모두 냉정한 이성으로 돌아가야만 할 때가 왔다.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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