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대권 4수 꿈이룬 ‘한국의 만델라’/김대중 당선자 인생 역정

◎투옥… 망명… 은둔… 파란만장한 40년/54년 정계입문,71년 대선 아깝게 고배/「서울의 봄」 재기… 군사법정서 사형선고/13·14대 연속패배 딛고 3전4기 ‘오뚝이’「대권 4수 꿈을 이룬 김대중 대통령.」 김대통령당선자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서 준비된 정치지도자의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각인시켜 정치입문 40년만에 대권을 장악했으며 50년만에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불굴의 정치인이다. 그는 1925년 12월 전남 목포 앞바다 외딴 섬 신안군 하의도에서 일본인 지주의 땅을 소작하던 중농 아버지 김운식씨와 어머니 장수금씨의 4남2녀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하의초등학교를 거쳐 1942년 목포상고(5년제)를 수석으로 입학했다. 재학시절 반일 작문이 문제가 돼 반장을 중도에 그만두기도 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일제의 징병을 피해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징병이 보류된 해운회사(목포상선)에 취직했으며 해방후 48년 목포일보 사장을 지냈고 51년에는 해운회사를 경영하는 등 청년실업가로 성공했다. DJ는 그러나 이승만 정권이 친일파를 중용할 뿐아니라 집권욕에 사로잡혀 야당의원을 빨갱이로 몰았으며 지난 52년의 부산정치파동 등 반민주적 정치행위가 자행되는데 대해 격분, 그릇된 현실정치를 바로잡겠다는 각오로 정계 입문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의 초기 정치역정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그는 54년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는 이어 56년 민주당 신파를 이끌고 있던 장면박사의 권유로 민주당에 입당,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는 58년 입후보 등록무효, 59년 강원도 인제 재선거에서 낙선한데 이어 4·19혁명 이후 치러진 5대 선거에서도 쓴잔을 마셨다. DJ는 그러나 지난 61년 인제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지만 사흘만에 5·16쿠데타로 의원직을 상실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는 6대 선거에서 목포로 지역구를 옮겨 금배지를 획득한 뒤 본격적인 의정활동에 나섰다. 개원 초기 6개월간 본회에서 13차례나 발언하고 본회의 최장인 5시간19분간 발언하는 등 재정통으로 명성을 떨쳤다. 국회 재무위와 건설위, 외무위, 노동위, 경과위, 국방위 활동을 통해 국정 전반에 대한 식견을 넓혔다. DJ는 지난 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선출 전당대회에서 당시 유력한 김영삼 의원을 극적으로 물리치고 후보 티켓을 따내 71년 대선에서 야당돌풍을 일으켰으나 노골적인 관권부정선거로 박정희 후보에게 70여만표 차이로 아깝게 패배했다. 그는 72년 유신선포 이후 79년 「10·26」사태까지 투옥과 가택연금, 해외망명 등 혹독한 시련을 겪었으나 폭넓은 독서와 재야활동을 하면서 민주화 운동은 물론 국가경영자 수업에도 충실했다. 특히 그는 다섯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55차례의 가택연금, 6년간의 감옥살이, 두차례에 걸친 외로운 망명생활 등 16년 정치활동 금지 속에서도 국민과 정의에 대한 사랑의 일념으로 정치지도자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DJ는 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정치활동을 재개했으나 전두환씨에 의해 내란음모 혐의로 군사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82년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그는 85년 2월 13대 총선을 불과 1주일 앞두고 귀국, 신민당 돌풍을 일으키는 등 정치활동을 재개, 87년 평민당 후보로 두번째 대권에 도전했으나 야권후보 단일화 실패의 여파로 낙선했다. 지난 92년에는 민주당 후보로 세번째 대권에 도전했으나 숙명적 라이벌인 김영삼 대통령에게 약2백만표 차이로 고배를 마시자 투표 다음날 국민 앞에 눈물로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떠나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6개월 정도 머문 DJ는 귀국 후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하고 정치활동을 재개한 다음 95년 지방선거를 맞아 지원유세에 나섰으며 그해 9월 민주당을 깨고 국민회의를 창당, 공식적으로 정계에 복귀하자 정계은퇴 약속을 어겼다는 이유로 국민들의 강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DJ는 러시아의 사하로프와 폴란드 바웬사와 더불어 세계 3대 인권지도자로 알려져 있으며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과 조지 미니 인권상을 받았고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독일의 초대 대통령 폰 바이체커, 만델라 등 각국의 정치지도자들과 깊은 교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대통령당선자는 특히 우리 경제가 IMF에 경제주권을 빼앗기고 대량실업과 기업연쇄부도로 난국에 처한 상황에서 자신이 집권하면 1년반만에 IMF 치욕을 졸업하고 경제를 활성화시켜 21세기를 주도해가겠다는 포부를 피력, 유권자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는 이와관련, 『오늘의 경제위기는 그간의 대통령의 지도력과 식견 부족 때문』이라며 『국민적 화합을 바탕으로 1년반 안에 IMF치욕을 벗어나 우리 경제를 풍요롭게 하는데 대통령으로서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황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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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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