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3일] 구텐베르크

[오늘의 경제소사/2월3일] 구텐베르크 권홍우 박제된 지식이 생명을 얻자 세상이 바뀌었다. 종교 이데올로기와 기득권이 무너지고 신세계로 향하는 뱃길이 열렸다. 과학이 꽃피고 동서양의 문명 수준도 역전됐다. 변혁의 시발점은 구텐베르크(Gutenberg) 인쇄술. 1398년께 독일 마인츠시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보석 세공과 유리 가공업에 종사하며 금속활자와 번지지 않는 잉크에 대한 기술을 익혔다. 첫 작품은 난산 끝에 나왔다. 대ㆍ소문자와 약어ㆍ복합문자 등 290개종의 활자체와 10만여개의 활자가 만들어졌다. 1455년 발간된 금속활자본 라틴어 성서의 가격은 800플로린. 하위성직자의 3년치 급여와 맞먹었지만 베끼는 데 5년에서 20년이 걸리는 필사본보다는 훨씬 쌌다. 성서의 성공적인 인쇄에도 그는 당초 목적인 대박을 터뜨리지 못했다. 달력과 문법서적, 심지어 면죄부까지 찍어냈지만 역부족. 재정난과 소송까지 당해 인쇄기술과 장비를 자본주인 푸스트에게 넘긴 구텐베르크는 교회의 보호 속에 연명하며 1468년 2월3일 사망했다. 구텐베르크 사후 활판인쇄술은 빠르게 전파돼 1500년께는 260개 도시에서 인쇄기가 돌아가며 지식혁명을 낳았다. 종교개혁을 촉발시킨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불과 2주 만에 전유럽에 확산된 것도 인쇄술 덕분이다. 성서의 독일어ㆍ영어 번역 활자본이 나오면서 문맹과 맹목적인 복종이 사라지고 지식독점구조가 깨졌다. 세계의 학계가 ‘직지심체요절(1377년)’을 최초의 금속활자로 여기면서도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의 이런 파급효과 때문이다. 구텐베르크라는 이름이 붙은 대학과 박물관, 거리며 축제, 캐릭터는 요즘에도 연간 수조원의 부가가치와 고용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다. 아깝다. 우리 몫이 될 수 있었는데. 입력시간 : 2006/02/0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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