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차이나 리포트] 토종 브랜드 육성 전략 결국 보호주의로 변질

외국산에 밀려 2000년이후설자리 점점 잃자<br>내수진작 정책 앞세워 옛 브랜드 살리기 적극<br>자국산업 이익 위해 외국기업 활동 제약까지


'용지우 자전거, 잉시옹 만년필, 하이어우 손목시계, 다바오 화장품, 후이리 신발'.

중년층의 중국인들에게 낯설지 않은 중국산 브랜드들이다. 하지만 2000년 이후 토종 브랜드들은 중국 내수 시장에서 서서히 설 자리를 잃어갔다. 외국산에 밀리며 자체 브랜드 파워를 잃었기 때문이다. 기술개발 등으로 제품의 품질은 꾸준히 향상됐지만 브랜드 파워가 약화되며 외국산 브랜드의 주문자상표제작방식(OEM) 생산 공장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중국 시장에서 옛 브랜드를 찾는 유행이 강하게 번지고 있다. 변속기가 없는 용지우 자전거를 타고 주머니에는 잉시우 만년필을 꽂고 손목에는 하이어우 시계를 차는 젊은 층이 간간히 보이기도 한다. 여기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가 중국의 오래된 브랜드를 찾아 소개하는 캠페인을 전개하며 중국인들 인식이 바뀌고 있다.

전문가들은 옛 브랜드에 대한 관심고조가 중국 새 정부의 내수 진작 프로그램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내수 진작의 과실이 외국산에 대부분 흘러가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일부 중국인들의 국수주의도 내수 브랜드의 부활에 힘을 싣고 있다.

중국의 브랜드 파워 강화 움직임은 이례적으로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에서 시작됐다. 경제관련 보도의 비중이 크지 않은 인민일보가 아예 경제면 1개면을 옛 브랜드 소개와 실패 요인 분석에 할애했다. 인민일보는 지난 4월15일부터 경제면에 '옛 브랜드를 찾아서'라는 분석기사를 게재한 후 5월 들어 자전거업체인 용지우, 하이어우 만년필 등 한때 중국시장을 휩쓸었던 중국산 브랜드들의 성공과 실패 요인을 꼼꼼히 분석했다.


인민일보는 중국 옛 브랜드들의 실패요인을 내부 문제와 외부 문제로 나눠 분석했다. 60~70년대를 거쳐 80년대 중국 지식인과 간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잉시옹 만년필의 경우 만년필에서 유성, 중성펜으로 바뀌는 시장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했다. 수익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가운데 잉시옹은 1996년 상반기 총자산이 7억300만위안에서 지난해 상반기까지 2,498만위안으로 줄어들었고 순자산은 3억7,200만위안에서 208만위안으로 과거의 0.5% 수준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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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시장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 채 그 동안 벌었던 자산을 고강도 플라스틱을 이용한 문구, 창호, 주방욕실도구 등으로 사업영역 확대에 쏟아 부으며 돈을 까먹었다. 결국 내부의 잘못된 의사결정이 수익은 수익대로 날리고 브랜드 가치까지 날린 셈이다.

화장품 업체인 다바오는 외국계로 넘어간 후 브랜드 가치를 잃어버린 케이스로 꼽혔다. 미국의 존슨은 2008년 23억위안으로 다바오를 인수한 후 온라인 등에 적합한 브랜드로 변화를 시도하다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존슨이 중국 내 최대 경쟁상대를 인수한 후 브랜드를 버리며 기존 판매 채널과 관계도 단절하면서 결국 매출과 수익 모두 급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보고 있다.

거원야오 상하이자화 이사장은 인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비즈니스 개념이 부족한 시대에 브랜드들이 탄생하는 바람에 중국의 고유 브랜드가 없다"며 "정부의 내수진작을 등에 업고 성숙단계에 접어든 중국 기업들이 더 많은 고유브랜드를 확보하고 부활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자국 브랜드 가치 강화 움직임은 시진핑 지도부의 내수 진작 정책과 맞물려 보호주의로도 변질되고 있다. 이는 외국기업들에 대한 활동 제약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 브랜드인 폭스바겐은 지난 3월15일 '소비자의 날' 중국중앙TV(CCTV)의 고발 프로그램에 방영된 후 국가질량감독검험검역총국으로부터 38만4,181대를 리콜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폭스바겐측이 손실액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전문가들은 6억1,800만달러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예상했다.

폭스바겐 이후 외국산 자동차 회사들의 수모는 계속 이어졌다. BMW, 아우디, 벤츠 등 고급 승용차들이 소음과 진동은 물론 인체에 유해한 배기가스를 내뿜는다는 언론 보도로 이미지 타격을 입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을 자국산업육성이란 시진핑 시대의 경제정책 기조와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중국내에서 30%에 불과한 중국산 자동차의 점유율을 2015년까지 40%로 올린다는 정부의 목표가 설정된 만큼 일단 외국산 브랜드의 점유율을 낮추기 위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에서도 중국 기업들의 브랜드 전략이 한층 강화되고 있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기업들의 M&A 건수 중 자원 및 소재관련 M&A는 46건으로 전년보다 10건 정도 줄었지만 브랜드관련 M&A는 28건으로 전년보다 9건 늘어났다. 자오강 중국과학기술 발전전략연구소 연구원은 "과거 벌떼식으로 M&A시장에 덤벼들던 것과 달리 중국기업들도 브랜드, 기술관련 M&A를 통해 새로운 장기전략 모델을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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