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6월 25일] 유가 급등의 추억

자고로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특히 과거의 잘못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지 못하면 실수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최근 진행되는 석유 시장의 흐름이 바로 ‘실수의 되풀이’라는 역사의 덫에 빠지는 듯하다. 지난해 이맘때쯤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는 배럴당 140달러를 웃돌아 금융위기로 기우뚱거리기 시작했던 글로벌 경제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당시 투자 은행들은 ‘원유 생산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오일피크 이론을 유행시켰고 경기 침체 조짐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의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는 근거가 부족한 분석을 퍼 날랐다. 하지만 이제는 유가 급등의 원인이 투기성 자본의 준동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고 있다. 유가 분석에 있어 수요 요인에 유달리 집착했던 투자 은행들이 바로 유가 불안정을 부추긴 배후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 미국 정치권은 투기 자본을 규제하는 실질적인 조치를 철저히 외면했다. 실제 미 하원은 지난해 6월 원유 투기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막강한 감독 권한을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 법안은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에서 결국 부결되고 만다. 미 행정부와 의회는 ‘투기 자본을 규제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대해서는 일제히 찬성했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딴청만 피웠다. 석유 메이저와 월가의 로비 앞에서 진정한 개혁 의지를 상실했던 것이다. 그 업보는 지금 유가 급등으로 다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월 배럴당 30달러대까지 내려앉았던 WTI는 현재 배럴당 70달러를 오르내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유가 상승의 원인으로 경기 회복 조짐에 따른 수요 확대와 투기성 자본의 유입을 꼽고 있다. 다시 한번 바람직하지 않은 역사가 반복되기 시작한 모습이다. 최근 각국 정부는 미약한 경기 회복 신호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유동성 회수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는 바로 원유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이 인플레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감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원유 시장에서 활개쳤던 투기 자본에 너무 손쉽게 면죄부를 내준 결과, 글로벌 경제는 유가 급등으로 경기 회복이 지연되는 부메랑을 업보처럼 등에 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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