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문제가 심각하다. 20대 이하의 청년 실업자가 35만6,000명으로 우리나라 실업자 중에서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실업률은 7.3%에 달한다고 한다. 이 통계에는 구직을 포기한 사람들은 포함되지 않는데 학교를 떠난 570만명의 청년 중에서 실제 취업을 하고 있는 인원은 450만명 정도라고 하니 사실상 100만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캥거루족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캥거루 새끼가 어미 주머니에서 지내듯이 학교를 졸업하고도 자립을 못한 채 부모의 수입에 의지해 사는 젊은이들을 일컫는다.
노는 사람이 많지만 한편으로 중소기업들은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구인난 때문에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로 공장을 옮기는 회사도 많다. 실업자 홍수 속의 구인난,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느 실업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서 월수입 120만원의 중소기업에 취직하지 않겠다고 한 답변이 절반이 넘게 나왔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안정적인 직업을 원하는 것은 본능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 부모들을 대상으로 자식들이 갖기를 희망하는 직업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의사가 15%를 차지했다고 한다. 판ㆍ검사나 변호사도 높은 순위를 차지했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이러한 안정적이고 인기 있는 직업에 대한 본능적인 열망이 지나쳐 개인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공대 학생이 의사가 되기 위해 휴학하고 수만명의 학생들이 사법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3대 클러스터가 있다고 하는데 신림동의 사법고시촌, 노량진역의 공무원 시험촌, 대치동의 대입학원가를 빗대어 하는 말이다. 이 클러스터에 모인 한국의 젊은이들은 연구개발(R&D) 활동 대신에 시험이라는 관문통과를 위해 그들의 두뇌와 시간과 정력을 쏟아붓고 있다.
선배 한 분이 총장으로 있는 학교에서는 수년째 졸업생을 100% 취직시키고 있다고 한다. 의대도 아니고 법대도 아니며 바로 산업기술, 즉 학생들이 기피하는 이공계통의 학교다. 이 학교의 취업비결은 철저하게 기업의 수요를 바탕으로 한 교육에 있으며 그중 하나가 애프터서비스와 리콜이다. 제조업에서 상품의 수요자에 대해 후속 서비스를 하듯이 학생이라는 제품을 수요자인 기업체에 인도하고 난 후에도 서비스를 다하자는 취지에서 취업한 졸업생들에게 학교에서 주기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가르쳐주고 기업체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졸업생은 재교육을 시켜 능력을 보충해준다는 것이다. 산업공단 내에 자리잡고 있는 학교입지상의 유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취업난의 파고를 넘은 사례로서 시사할 점이 많다고 본다.
청년 실업문제는 경기불황 등 단기 순환적인 원인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인력수요의 패턴이 달라지는데 교육제도나 의식과 관행은 이에 맞춰나가지 못하는 데 기인한다. 과거에는 대학을 갓 나온 학생들을 수천명씩 신규사원으로 뽑아 회사에서 훈련시키는 일이 많았으나 지금은 당장 일을 맡길 수 있는 소수의 경력 있는 사람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수요 패턴이 바뀌었다. 따라서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인턴십이든 중소기업이든 일을 시작해 경력을 쌓는 것이 올바른 길이 된다.
대학의 입학이나 졸업시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것처럼 여기고 매달리는 관행을 고쳐야 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취리히공대의 입학시험에 실패해 1년 동안 예비학교에서 수학하는 조건으로 입학했으며 대학을 졸업할 때도 학교의 조교가 되고자 희망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방황과 고민 끝에 그는 베른 특허국의 하급직원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상대성이론은 바로 이곳에서 발표됐으며 그 업적을 바탕으로 후에 대학 교수가 됐다.
우리나라에서 학벌이나 명성을 중시하는 관행은 뿌리가 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채용자 중에서 경력직을 뽑는 비율이 60%를 넘었다고 한다. 비록 작은 기회라도 주어질 때 최선을 다한다면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기회가 점차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정택(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