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FTA, 트로이 목마 돼서야…

‘알파형 인간’이라는 말을 아시는지. 동물 세계의 서열 1위를 뜻하는 ‘알파 메일(alpha male)’로부터 온 이 말은 집단에서 가장 힘있고 지배력 있는 리더를 가리킨다. 케이트 루드먼은 저서 ‘알파 신드롬’에서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잠재적 위험성을 지적하며 이들의 이기주의와 독선이 자신은 물론 조직까지 파멸로 몰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어쩌랴. 태고 이래 인류는 그들 소수의 리더십하에 강한 무리를 이뤄왔고 그 독선 아래 살아남아야 하는 자들의 고민은 강자의 힘 크기 만큼이나 늘 깊은 것을…. 인간사 모든 일들이 나라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게 세상 이치다. 국가에도 알파형이 있을까. 말할 것 없이 미국이다. 지금 지구촌을 지배하는 세계 질서-세계화ㆍ신자유주의? 따라야 할 이 시대 선(善)처럼 세뇌돼온 이 말을 단순화하면 미국식 질서 속에 국가 체제를 짜나감과 크게 다름 아니다. ‘KORUS(Korea+US).’ 대통령이 미국과 맞짱을 떠 대등하게 체결했다고 힘줘 강조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그 질서의 한 유형, 결국 미국법과 시스템, 관행을 기본 룰로 한 ‘통합의 게임’의 의미다. FTA가 평등한 조약이라고? 순진한 생각이다. 그저 겉모양만 일 뿐, 강자가 게임의 규칙을 정해논 환경하에 약자가 대등하게 승부하기란 원천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다만 그 룰을 잘 익혀 지혜로이 대응해나갈 때 평등쪽으로 수렴할 수는 있다. 이번 FTA 협상기간 내내 한국이 미국 로펌 변호사들로부터 조언을 받은 반면 미국 측은 한국법에 대해 거의 조언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협정의 본질을 비추는 작은 단상(斷想)이다. 일반적으로 조직이든 나라든 ‘센 자(者)’가 버티는 세상에서 사는 측은 강자가 짜논 판 안에 있을지, 그 바깥에서 외로이 피 터지게 싸울지를 먼저 결정하고 그런 후 다시 생존법의 각론을 고심한다. 미국과의 FTA 체결은 자주성 등의 시비는 차치하고 그 질서 안에서는 일단 세계의 주류국들과 큰 어려움 없이 소통할 수 있고 그 질서 바깥에 있으면 왕따당하며 세상살이가 고달파질 확률이 높은 ‘강자 주도형 질서’ 속의 편입이라는 점에서 일단 실리ㆍ실용적 선택이란 정당성을 갖는다. 더구나 우리처럼 수출로 먹고사는 경제 체제하에서는 더 그럴 수 있다. 따라서 “협상은 A, 대책은 F”라는 평가, ‘체결 자체보다는 대책과 향후 전략이 더 중요하다’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은 그런 정황 논리상 아주 맞는 말이며 따져볼 논쟁의 포인트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며 우선 생각해야 하는 게 뭘까. 상품 교역보다 중요한 것, 바로 우리의 주체적 문화 의식을 어떻게 지켜나갈까의 문제다. 그 토대 위에서라야 상품 교역으로부터의 경제적 이익도 의미를 갖는다. 가뜩이나 미국식 시스템ㆍ사고방식이 안방, 뒷마당까지 차고 앉은 현실에서 이번 FTA가 자칫 물질의 교역을 넘어 우리 문화 전반을 온통 미국화시키는 계기로 작동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최악의 사태다. 실제 이번 협정안에는 그 같은 점에 대한 우려감을 증폭시키는 내용들이 적잖이 담겨 있다. 문화(영화ㆍ방송ㆍ출판ㆍ법률서비스 등) 분야에서의 양보가 특히 그렇다. 자동차ㆍ섬유 등 일부 산업 분야 상품을 더 팔 수 있게 된 반대 급부로 우리 정신과 가치들이 있을 자리를 빼앗긴다면 올바르지도, 이익이 남는 거래도 결코 아니다. 이제 눈길을 보이는 쪽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옮겨야 한다. 재화의 거래가 끌고 들어오는 뒷면을 일컬음이다. 자본과 상품보다 더 무서운 문화와 정신의 종속을 막기 위한 보다 실질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정부가 서둘러 머리를 짜낼 일이다. 상대가 아무리 센 알파형 국가라도 똘똘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다 보면 후대 언젠가는 ‘한국식 가치’가 세계로 확대되는 위치 반전의 상황을 맞을 날도 올 수 있다. 그리고 그 똘똘함의 뿌리가 바로 전통과 현대를 근사하게 조화시킨 우리의 문화다. FTA가 트로이 목마가 되지 않게 하려면 문화적 자존이라는 ‘칼’을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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