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환율대란/환차손 눈덩이… 외환관리팀 개점휴업(비상경영의 현장)

◎“외환 매입땐 사태 더 악화” 선물환 관리가 고작/기업 올손실 4조500억… 기계·중공업 등 타격 커29일 상오 8시 국내 최대 정유업체인 SK(주) 여의도 사옥 16층 외환관리팀. 이른 시간이지만 이 팀은 전원이 참석해 회의를 갖고 있었다. 이런 이른회의는 벌써 한달이 다되간다. 해외 자금조달과 관리를 담당하는 이 부서는 달러에 대한 원화환율이 요동치기 시작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이달초까지만 해도 달러당 9백10원대를 유지하던 환율이 하순들어 연일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이어 29일에는 9백60원을 훌쩍 뛰어넘으며 거래가 중단되는 등 시장기능이 마비되면서 비상경영에 들어간 것. 원유를 들여다 휘발유와 각종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장기 부채가 10억달러, 단기부채 15억달러 등 외화부채만 25억달러에 달한다. 따라서 환율이 1원 뛸때마다 25억원씩 환산손 발생한다. 또 원유를 들여올 때마다 90∼1백80일짜리 연지급수입채권(유전스)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회사가 활용하는 자금은 연간 40억달러. 여기서도 환율이 1원 오를 때마다 40억원의 환차손이 생긴다. 올들어 이렇게 생긴 환차손이 29일까지 약 2천억원. 물론 이중 일부는 제품원가에 반영하지만 장기부채에 대한 손실은 전혀 반영할 수 없는데다 정부의 물가안정책과 가격경쟁 때문에 유가에 일부밖에 반영하지 못한다. 이 추세라면 올해 적자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여늬때 같으면 한 푼이라도 환차손을 줄이기 위해 회의를 빨리 끝내고 15개에 달하는 거래은행과 정보를 주고 받느라 전화통은 불이 나고 딜러들은 정신없이 거래처를 드나든다. 그러나 이날은 11시가 될 때까지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환율이 오르면 외환을 매입하고 선물환을 조절하는 등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예외입니다. 속수무책입니다.』 회의를 주재했던 유동익팀장의 탄식이다. 환율이 하루에 10원 단위로 널뛰기를 하고, 기업마져 달러 사재기에 나설 경우 달러화는 더욱 치솟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부의 요청사항이기도 하다. 외환팀이 하는 일은 선물환을 관리하는 것이 고작. 환차손은 이 회사만의 고민이 아니다. 우리기업들의 총 외채규모는 지난 3월말 현재 4백10억달러. 올들어 환율 상승분을 감안하면 환차손 규모가 4조5백억원에 달한다. 외화자금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기계, 중공업, 항공업계의 고민은 더 크다. 기업들은 내년도 경영계획 수립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환율이 오르면 수출 가격경쟁력이 생겨 좋을 것이란 인식을 갖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게 입증된 셈』이라고 유팀장은 말한다. 설비투자 과정에서 많은 외화부채를 안고 있고, 원자재 수입비중이 높은 우리기업들의 경영구조상 환율급등으로 잃을게 더 많다는 것. 『사태를 지나치게 낙관한 정부나 무작정 외화자금을 끌어다 설비투자를 단행했던 기업 등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경상수지 안정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과 소비절약, 과감한 구조조정 등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국민 모두가 나서햐 할 것입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환차손을 바라보는 외환팀 관계자들의 외침이다.<민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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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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