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2월 24일] <1628> 파비아 전투


1525년 2월24일, 이탈리아 파비아(Pavia). 프랑스와 스페인 군대가 맞붙었다. 이탈리아 지배권을 둘러싼 이 전투의 시작 직전 병력은 프랑스 2만3,500명 대 스페인 2만3,000명. 엇비슷했지만 내용에서는 프랑스가 앞섰다. 스페인보다 3배 이상 많은 53문의 대포를 보유한데다 승패를 결정 짓는다는 기병 수도 6,500명 대 4,000명으로 1.62배 많았다. 자신에 찬 프랑스는 새벽5시를 기해 선공을 퍼부었다. 4시간 동안 계속된 전투의 결과는 스페인의 압승. 승리한 스페인은 500여명의 인명피해를 입은 반면 프랑스군은 1만2,000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국왕 프랑수와1세도 포로로 잡혔다. 스페인의 비결은 3,000명에 이르는 화승총 부대. 농민 출신 소총병들은 창병과 협력해가며 전신에 판금 갑옷을 두른 프랑스 귀족기사단을 괴멸시켰다. 요즘 가격으로 환산해 단가 600달러짜리 화승총이 수만달러짜리 중장갑 기병을 무찌른 것이다. 화승총의 위력에 놀란 유럽 각국은 너나없이 총기병 양성에 나서 세계는 화약이 전쟁의 흐름을 좌우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포로로 잡힌 프랑수아1세는 동전 개수를 확인하는 데만 4개월이 걸렸다는 몸값을 지불하고야 겨우 풀려났다. 프랑스는 이탈리아에 대한 기득권도 잃었다. 두 나라 경제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막대한 배상금을 챙긴 스페인은 쇠락하고 프랑스는 힘을 되찾았다. 승리에 취한 스페인이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통에 재정이 고갈되고 산업기반도 인력부족으로 무너져 배상금마저 프랑스 제품을 수입하는 데 들어갔다. 스페인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 1559년까지 네 차례에 걸친 프랑스ㆍ스페인 전쟁에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전쟁을 하려면 남의 땅에서 싸우는 게 상책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