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3월 10일] 아시아와 유럽의 위기, 그리고 미국

불 난 집 부채질이 범법행위일까. 다소 실없는 이야기를 꺼낸 것은 월가의 잔인한 탐욕이 새삼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그리스 외채 위기를 조장한 혐의로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월가 금융회사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고 증권거래위원회(SEC)도 같은 사안을 놓고 조사에 들어갔다. 신용부도에 대비하는 보험성격의 파생상품인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를 이용한 투기가 그리스 외채 위기를 증폭시켰는지 여부가 조사의 핵심이다. 그런가 하면 법무부는 대형 헤지펀드의 유로화 투기에 대해 담합 정황을 포착, 내사를 벌이고 있다. 남의 불행을 이용해 큰 돈을 버는 월가의 행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미국이 남의 집 안마당에서 횡포를 부린 제 자식에게 매를 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월가는 그리스 국민이 받는 고통에 아랑곳없이 국가 부도가 나면 떼 돈을 버는 파생상품과 유로화 폭락에 거액을 걸었다. 유럽을 공격한 월가에 대한 미 당국의 조사는 위기 확산을 막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이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조치이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전례 없이 유난을 떠는 미 당국의 움직임은 지난 1997년 쓰라린 경험을 한 한국의 외환위기와 오버랩되면서 뒷맛이 그리 개운치는 않다. 월가의 공격 대상이 유럽이 아니라 이머징마켓이었다면, 미 금융시장이 무풍지대였다면 이런 책임 있는 조치를 취했을까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한국 외환 위기나 그리스 외채 위기가 한국과 그리스의 책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역외 투기세력의 공격이 위기를 부풀렸다는 것 또한 명백하다. 월가는 불 난 집에 부채질을 해댔다. 미 법무부의 조사대상인 소로스펀드는 1992년 영국 파운드화 하락에 베팅하면서 영란은행(BOE)을 초토화시켰고 1997년 태국 밧화를 공격해 국가부도 위기로 몰고 간 장본인으로 지목되고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월가의 잔인한 머니게임이 단죄의 대상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세계 각국이 글로벌 위기 재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시점이어서 이번 조사가 던지는 시사점은 적지 않다. 새로운 게임의 룰을 마련하고 글로벌 정책 공조의 본보기로 삼는 계기가 된다. 자본의 국적이 무의미해지고 금융 거래의 국경이 허물어진 글로벌 시장이라지만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CDS의 투기적 거래는 제한받아 마땅하다. 올해 주요20개국(G20) 의장국인 한국은 유럽의 위기와 이에 대한 미국의 대처방안을 주시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