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800원 시대 오나] 사라진 마지노선 '날개 잃은 추락'…대통령 개입도 안먹혀"美금리 인상곧중단" 예상 달러 약세 부추겨中 '美환율보고서' 촉각·日시장도 속수무책정부 "지금 개입하면 돈만 날릴수도" 손놓아 김영기 기자 young@sed.co.kr 현상경기자 hsk@sed.co.kr 관련기사 "상반기 900~910원까지 급락" "환위험 관리해 드립니다" 환율 11원 폭락 920원대로 “환율 때문에 골치 아프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진 지난 4일. 시장은 최고 통치권자를 믿었다. 주저 없이 달러 매수에 나섰다. 달러당 930원 초중반까지 떨어졌던 환율은 일시에 940원 가까이로 치솟았다. 마치 오뚝이 같았다. 개장일 기준으로 하루가 지난 8일 시장은 시작과 함께 무너졌다. 좀처럼 상상하기 힘들었던 대통령의 ‘구두 개입’조차도 깡그리 무시됐다. 중장기 흐름에서 강력한 지지선으로 생각됐던 930원선이 속절없이 붕괴됐다. 한번 무너진 이상 달러당 930원은 더 이상 마지노선으로서 의미를 잃어버렸다. 글로벌 외환시장에 흐르는 달러화 약세의 기조를 막을 결정적 계기는 당분간 찾기 힘들 듯하다. 말 그대로 ‘브레이크 없는 하락’이다. ‘달러당 800원대’ 시대를 준비할 시간이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추락하는 달러, 날개가 없다(?)=8일 국제 금융시장은 달러화의 ‘날개 잃은 추락’을 단선적으로 보여준 하루였다. 엔화ㆍ유로화 할 것 없이 시차를 두고 기술적 지지선 아래로 떨어졌다. 장이 열리자마자 엔ㆍ달러 환율이 지난주 말 113.90엔에서 7개월 만에 최저 수준인 111엔선으로 급격하게 미끄러지더니 원ㆍ달러 환율도 929원30전으로 힘없이 내려앉았다. 시장 곳곳에서 달러화 가치를 끌어내릴 요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왔다. 단기적인 촉매제는 미국에서 등장했다. 미국의 4월 비농업 부문 고용 창출이 예상치를 밑돈 탓이었다. 시장에는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사회 의장의 금리인상 중단 가능성 발언이 오래 전부터 자리잡고 있던 터. 고용부진 지표가 나오자 시장은 10일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인상 기조의 종결’을 선언할 것으로 확신했고 달러 투매마저 엿보였다. 블룸버그통신의 설문조사 발표는 이런 믿음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조사에 따르면 미 프라이머리딜러 22개사 모두가 이번주 기준금리 인상(0.25%포인트)을 점쳤지만 이중 17개사는 이번을 끝으로 2년에 걸친 16차례의 인상 행진을 마무리하고 오는 8월까지는 더 이상 올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달러화의 추락 요인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나타났다. 중국 시장은 이번주 발표될 미 재무부의 환율 보고서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명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서방선진7개국(G7)이 4월21일 신흥국가들의 환율 유연성과 절상이 필요하다고 밝힌 마당. 재정경제부의 한 당국자는 “환율조작국으로 지명될 경우 위안화 절상 욕구를 높이고 이는 다시 신흥시장 통화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G7 회담발(發) 충격파는 일본에서도 발생했다. 일본은 당시 회담에서 “달러가치에 대한 하락 언급은 없었다”(와다나베 재무차관)며 회담 결과를 재해석하려 했다. 미국이 이를 두고 볼 리 없었다. “엔화가치의 상승을 억제하려는 일본의 태도가 불만스럽다”는 익명의 발언이 미 재무성으로부터 나왔다. 그리고 해외 헤지펀드들의 달러화 매도가 줄을 이었다. ◇정부, 시장개입 포기(?)=환율 하락이 가파르게 진행된 이날 외환 당국의 핵심인사는 “지금은 실탄(달러 매입용 자금)이 문제가 아니다. 곤혹스럽다”는 말을 연신 이어갔다. 우리 정부가 막고 나선다고 글로벌 달러 약세의 흐름을 막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개입하다가 돈만 날릴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때문인지 이날 시장에 정부가 개입한 흔적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이날 하루만 놓고 보면 정부도 손을 놓은 셈이다. 안절부절못하기는 일본도 마찬가지. 일본 관료들은 시장에 개입하지 말라는 미 재무부의 ‘경고(?)성 발언’이 나온 후 대부분 입을 닫았다. 영악한 시장은 이를 적절히 활용했다. 역외세력은 장 막판 달러화를 무차별적으로 내다 팔았고 힘겹게 버텨내던 930원의 방어벽은 무너져내렸다. 시장은 이제 10여년 전의 악몽을 떠올린다. 플라자합의가 체결된 85년 260엔대였던 엔ㆍ달러 환율은 1년2개월 뒤 150엔대로 폭락했고 10년간 하락세를 지속하며 95년에는 80엔대까지 떨어졌다. 시장은 이제 달러당 900원 붕괴를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 물론 지금 우리 외환시장의 체력은 1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문제는 시장의 심도(深度)와 관계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데 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외환시장의 취약성을 이야기하는데 거기에 동의는 하지만 지금과 같은 시장의 거대한 흐름과는 사실 얘기가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달러 약세의 흐름은 당분간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점진적인 달러화의 약세를 준비해야 한다. 900원도 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외환당국 관계자)는 말이 빠르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입력시간 : 2006/05/08 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