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예르긴 박사와 조셉 스태니슬로 박사가 공동집필한 `더 커맨딩 하이트(The Commanding Heights)`라는 책이 있다. `The Commanding Heights`는 `경제고지(經濟高地)` 또는 `경제의 주도권`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아무튼 이 말은 1922년 레닌이 처음 표현한 것으로 한 국가경제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의미한다. 이 책에서 인류역사는 한나라 경제의 주도권을 시장이 갖느냐 정부가 갖느냐 하는 투쟁의 여정임을 깨닫게 된다.
19세기말 아담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 체제가 대공황을 맞아 쇠퇴하면서 케인즈에 의한 수정자본주의 즉 규제자본주의가 세력을 얻게 되었다. 한편 구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 국가들은 전적으로 국가가 경제주도권을 거머쥐고 국가소유와 국가계획에 의한 시장이 없는 통제경제의 극을 달렸다. 자본주의 국가들에 있어서도 지난 40년 동안 행정만능주의와 무제한의 복지만이 절대적인 선(善)인 것처럼 여겨졌고 `정부의 지식`이 `시장의 지식`보다 우월하다고 간주되었다. 그러나 정부가 `시장의 실패`를 막아보겠다고 시장에 과도하게 간섭하면서 오히려 `정부의 실패`가 더 심하게 나타나게 되면서 정부가 항상 선하고 우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규제주의자인 케인즈는 무너지고 자유시장의 열렬한 옹호자인 하이에크가 승리하게 된 것이다. 70년대 중반부터 정부의 역할이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고 80년에 와서는 시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영국의 대처수상의 개혁이나 미국의 레이건대통령의 개혁은 모두다 자유시장경제로의 전진이었다.
90년대에 들어서서는 공산주의는 실패로 끝나고 국가는 경제고지에서 퇴각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하여 정부가 경제고지를 점령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곳에서 철수했는가 하는 것이 20세기와 21세기를 가르는 분수령이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구소련과 공산주의의 종말은 세계화를 촉진시켰고 자유주의의 물결이 세계를 압도하기에 이른 것이다. 자유주의는 정부역할의 축소, 개인자유의 극대화, 경제적 자유와 시장의존 그리고 탈(脫)중앙화된 의사결정을 지지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흐름과 같이 가고 있는가 역행하고 있는가. 지난 97년 경제위기가 `정부실패`로 인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민간기업을 속죄양으로 삼아 `시장실패`에 그 원인이 있다고 진단하고 정부는 시장을 개혁하겠다고 한다. 굳이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정부개혁이 먼저일 것이고 시장개혁은 그 다음일 것이다. 우리 정부도 경제고지에서 내려와 시장에게 그 자리를 내어줄 때 진정한 시장개혁이 이루어 질 것이다.
<손병두(전경련 상임고문) >